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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幻影

시장 건물이 통째로 시설변경을 해야 하는 관계로 넓은 주차장 한켠에 천막을 치고 입주했던 가게들이 공사기간 동안 야외 장사를 해야 했기에 갑자기 찬바람이 몰아닥친 날 무릎에 얇은 담요를 올려 덮고 손님을 기다리다가 무심코 옆쪽 간이 천막 식당을 보니 이상하게 눈길을 끄는 두 노인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어 그중 한 노인을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미세한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 스스로 놀라 아차 싶어 스스로 다독였다. 팔자에 없는 청상과부로 만든 영감이 만약 살았더라면 저 곱게 늙은 노인과 모습이 비슷하지 않을까? 엠병 할 놈의 잉간 뭐가 그리 급해 그리 일찍 뒈져서 이날입대껏 쌩고생을 시키나 그래. 저 이의 마누래는 월매나 좋을까나? 참 인물도 좋네. 주책이지 이 나이에 시샘이라니.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도 잠..

카테고리 없음 2021.10.25

고구마

간밤의 꿈은 생생하다 못해 괴기하기도 해 왜 이미 불타 없어진 그 옛날 집에서 젊은 아내와 아이들이 눈앞에 있는 듯이 보이는 걸까 기온이 차가워진 김에 소주 한 병을 들고 혹 서리버섯이 나왔는가 산엘 갔다 산 아래 늙은 부부는 밭일을 하네? 작은 텃밭에 두엄과 비료를 흩뿌리기에 무얼 하시려고 물으니 갈아엎고 마늘을 심으려 한다고 하셔서 무얼로 갈아엎으시나요 하니 그냥 삽으로 파 뒤집으려고 하신다네 소주 한모금으로 얼굴이 빨개져서 당장에 운전도 못하겠고 술기운이 진정될겸 밭일을 거들었다 고구마를 심었던 밭인 지 푹푹 파제끼는 삽질에 작은 고구마가 한 개 불거져 나오더니 어떤 곳에서는 커다란 고구마가 삽날에 살짝 스치며 솟구친다 노부부는 고구마를 깨끗이 씻어 비닐봉지에 담아주며 가져다 먹으란다 밭을 잠깐 일..

카테고리 없음 2021.10.24

화려한 버섯

여름 무더위가 한창일 때 찔끔찔끔 긴 장마가 지나가고 우리 산에 붉은 버섯이 눈길을 끌었다. 추위가 오기 며칠 전 다시 보게 된 버섯은 그새 두배로 자라났다. 겨울을 나고 내년엔 또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까. 독버섯인지 식용버섯인지 알 수도 없고 물론 버섯의 명칭도 모른다. 같은 나무둥치 위쪽에는 하얀 버섯이 무리 지어 자라나고 또 두배로 몸집을 불리고 있어 형태가 비슷한데 위에는 흰색 아래는 붉은색 이거 무슨 버섯일까?

카테고리 없음 2021.10.18

비양도

좁다란 작은 다리로 연결된 비양도 평생 말을 타 보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지요. "말을 타면 고삐 잡히고 싶다"는 속담처럼 전문 기사의 안내로 고삐 잡힌 말을 무려 두 번이나 타 보았습니다. 아주 작은 섬이라서 시야가 너무 좋아요. 두마리의 사진 중에 오른쪽 말을 탔지요. 종일토록 관광객에게 시달리는 말의 처지가 애처롭기만 하여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섬인가 봅니다. 비양도에서 본 우도의 높은 봉 소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1.10.04

우도 해변

외국인 세 사람 배낭이며 마시던 음료 귀중품 옷가지를 모래 위에 놔두고 해수욕을 즐기려고 물가를 향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지녔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심의 극치로 물가를 향해 멀어진다. 다섯 명의 늘씬한 외국 아가씨들 역시 배낭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훌렁훌렁 옷을 벗더니 물속으로 빠져든다.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아주 잠시 잠깐의 한눈에도 곁에 두었던 물건이 순식간에 없어졌는데 저렇게 아무렇게나 놓아두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니 어느덧 알게 모르게 대한민국은 여행자들의 천국이 되었다. 외국인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분은 혼자 왔나 보다. 짐을 놓아두고 물에서 실컷 놀다가 나와서는 배낭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혹시 누구의 손을 탓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건드린 흔적이 없자 느긋하게 ..

카테고리 없음 2021.09.30

해돋이

성산일출봉 늦을세라 부지런히 잘 조성된 계단을 쉼 없이 올라 가쁜 숨 턱에 차 헐떡 차게 부는 바람결에 한참 땀이 식을 무렵 동녘은 불그스레 밝아 머릿속은 텅 비어 무념무상 소원은 무슨 하늘과 물이 닿은 틈 없는 경계 속 혼돈에서 솟는 생명의 원천 불덩이가 전부인걸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변화되는 순간의 연속 대명천지 환한 세상 해를 마주한 일신은 예측 불허한 일상의 시작 사유의 얽힘 다시 번뇌 소원은 무슨 공염불인걸

카테고리 없음 2021.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