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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봉

올해 포도밭 농활을 이곳으로 농촌에선 초짜 농군을 부리는 요령이 있는 듯 해가 한참 남아있어도 노련한 농부는 "오늘은 그만하시지요" 월류봉은 말 그대로 만월이 머무르다 구비구비 봉우리를 넘는 곳 유월초 모내기가 한창이던 무논에 머리에 해를 이고 있는 월류봉이 포도넝쿨을 감싼 온실과 함께 거꾸로 처박혔다. 포도넝쿨 끝순 따기와 곁가지 치기를 온종일 하늘을 쳐다보며 이 고랑 저 고랑 왔다가 갔다가 허리 고장은 뻣뻣하게 굳어져서 한동안 굴신 불가 겨우겨우 논두렁길 걷다가 반사되어 처박힌 산 그림자를 보고 상쇄하는 몸의 처량함 내님은 가서 오지를 않고 귀의처 또한 마땅치 않고 해는 넘어가고

카테고리 없음 2022.06.29

운명

벌써 십 년이 되었네? 웬 팔자가 이렇게 기구할 수가 있냐며 수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지 팔자소관은 문외라서 알 수 없다고 하지만 하늘이 정한 운수일지라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니 욕심부리지 말고 열심히 살아봐 하고 가벼운 답변으로 보냈었나 보다 사람의 성향은 변하기가 쉽지 않아 그러나 한순간의 대오大悟에 생지옥이 극락으로 바뀌는 것이야 십 년이면 간난艱難의 세월을 다 보낸 거지 그러니 험한 운수 잘 넘기고 좋은 명으로 바꿔보자 네 운명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네가 선택해서 지질히 고생을 한 거야 크게 외쳐봐 지금부터 내 팔자는 좋아진다고

카테고리 없음 2022.06.27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인지도 모른다. 일주일을 꼬박 앓고 일어난 기분이다. 관운장이 형주를 지키다가 여몽의 간계에 빠져 땅을 다 잃고 쫓겨 외로운 고성인 맥성에 의지해 이를 갈고 있을 때 손권과 여몽은 산통에서 산가지를 뽑아 역점을 쳐보니 지수사(師) 괘가 나왔다. 점괘를 풀더니 반드시 관우를 사로잡겠다며...... 삼국지에 역점을 치는 대목을 어렵게 찾았다. 물론 점치는 장면은 무수히 많으나 괘명을 분명하게 밝힌 곳은 딱 한 군데밖에 없다. 병(독감)이 쉽게 나을 것인지 심심풀이 역점을 쳐봐야겠다. 섭생과 더위를 잘 다스려 몸을 잘 보중 하시라.

카테고리 없음 2022.06.20

아이스크림

만 42년이 넘은 누렇게 바랜 책을 보다가 어느덧 늦은 시간 후덥 출출 어제 사 온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서 꺼내 뚜껑을 열고 속 비닐막을 뜯어 힘주어 한숟깔 떠 입안에 넣는다 그 첫맛의 시원달콤함이란 가히 형용이 불가하다 고형물 너트의 부서지는 고소함이 더해 무시무시한 야식의 폐해를 망각하고 쉽게 숟가락을 놓지못한다 아 자제력 상실한 무식한 식탐이여

카테고리 없음 2022.06.17

산달래꽃

뭔 사랑이 깊었길래 시름시름 병명 몹쓸 상사병이래 목만 길게 빼고 그리고 그리다가 고래 등 대궐 수십 채 지었다 헐었다 사모의 번민 끝이 없어 망할 놈 곁눈 한번 없고 무정타 달래나보지 까무륵 세상 하직할사 궐녀의 두 눈엔 별이 반짝 뭔 사랑이 한이길래 궐녀의 혼 달래 꽃 되어 가늘고 긴 줄기 하늘 높이 뽑아 올려 둥글게 별꽃 뭉쳐 달고 하늘을 우러러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무정한 놈 달래나보지 홀로 품어 식지 않은 연정 살가운 미풍에 흔들

카테고리 없음 2022.06.07

메꽃

붉으스레 황토밭 둑 가늘고 통통한 긴 뿌리 뻗어 사방으로 번지고 별로 눈에 띌 것 같지 않은 넝쿨에선 소박하고 예쁜 꽃이 헤버러져 건너 집 아낙 함박웃음처럼 세파에 달관한 듯 사뭇당당 보잘것없는 삶 탓도 없다는 수심의 미소 가득한 표정 웃음 반 설음 반 응어리진 恨 어찌 맺힘이 없으랴만 헤픈 듯 다문 듯 감춘 다감 다정한 향심 지치고 갈라진 기다림

카테고리 없음 2022.06.03

노란장미

도시의 골목 경계는 참 모호해 탁 트인 공간 가운데 그냥 벽인지 넘지 못할 선인지 곁눈질 살짝 막는 가리개인지 야트막한 붉은 벽돌담 그야말로 예쁜 내님을 닮은 우아하고 은은한 노란 장미가 우뚝 담을 감싸고 피어 문득 혼과 마음을 홀리네? 열다섯 여린 심성 酒仙의 경지에 오르신 담임선생은 거나한 취기로 게슴츠레 보시더니 너는 평생 칠팔 명의 여자가 따르겠다 복두 많은 놈 혼잣말처럼 하시고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 붉히고 친구들은 놀려대고 송이가 유난히 큰 노란 장미꽃 술에 흠뻑 취한 선생님의 뜬얼굴색 풍성한 젊음을 과시하던 내님의 빛깔 투명한 성향의 첫사랑 잠재한 기억 저편의 짝사랑 깊은 사랑의 꿈에 그리는 애인 순간 내 사랑이 머문 도시 골목의 경계 오월 여왕

카테고리 없음 2022.05.18

수선화 / 보리똥꽃

작년에 강남에 사시는 고선생은 뜬금없이 화훼시장엘 데려가서 저 수선화 세 그루와 철쭉 두 그루를 사더니 가져가서 아무 데나 심으라며 떠맡기다시피 안기기에 우리 산 무덤가에 마지못해 심었는데 철쭉은 지난 한파를 이기지 못해 고사하고 수선화는 딱 한그루 싹이 나와 보란 듯이 활짝 피어 자태를 뽐낸다. 보리똥나무는 나이가 몇인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 올핸 유난히 꽃이 많아 절로 눈길을 끌고 늦가을이나 되어야 겨우 보리알만 한 열매가 붉은 얼굴에 흰점 가득 보일 듯 말 듯 선보인다.

카테고리 없음 2022.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