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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목욕

무더운 날 박동진 명창의 적벽가를 감상하며 지루하게 산소를 뒤덮은 잡풀을 뽑고 있는데 감악산 친구의 전화가 반갑다. 너무 무리하지말고 빨리 오란다. 머리속이 몽롱할 정도로 햇볕에 달구어진 몸을 시원한 자동차 바람으로도 다스리지못하고 부지런히 친구집엘 도착하니 이 친구도 몹시 더웠는지 빤스바람으로 반긴다. - 뭘하는데 벗고 난리야. - 아 목욕하려구. 야외에 만들어놓은 커다란 욕조에 맑은 물이 가득하다. 산골마을이라서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 그냥 홀랑벗고 목욕을 한단다. 차가운 물에 몸을 담가보기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햇빛이 따가운 날 한기가 몰려올만큼 차갑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든말든 찬물에 누워 흰구름이 드문드문 박힌 파란하늘을 보며 - 자네는 진정 신선놀음을 하는구먼. 하였더니 벌거벗은 친구는 너털웃..

카테고리 없음 2021.06.29

응급실풍경

백신부작용이 의심스러워 애초 접종의원을 찾았다 이러저러한 증상이 있었다니까 일단 피검사라도 받아 보라며 종합병원 응급실을 추천한다 소견서를 들고 찾아간 응급실은 만원 두시간 넘게 기다린 뒤 드디어 만난 의사왈 피검사와 CT를 찍어야 된단다 곧바로 간호사는 링겔부터 찔러 넣는다 또 그럭저럭 두어시간 흐르고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희미하게 뇌경색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고 안과검진을 받고 엠알아이를 찍어 정밀검사를 해야한단다 대기실에 가득한 응급환자들은 기다리다가 죽게 생겼다며 불만이 가득하다 엠알아이는 포기하고 허탈하게 퇴원하려는데 각서에 서명해야만 한단다 무려 일곱시간을 응급실에서 보냈다 진료비는 이십오만원 넘게 지불하고 .... 일진이 매우 사나운 날

카테고리 없음 2021.06.26

단풍취

감악산 친구는 산나물이 제철이라고 나들이를 부추긴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쇠어서 못먹는단다. 일과시간인데 뭔소리냐고 물으니 퇴근시간이 5시인데 자네가 온다면 30분 먼저 퇴근하여 한시간 정도 산나물 채취가 가능하니까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 친다. 산나물이 지천이라던 곳엘 어렵게 찾아가서 비탈이 험한 산속을 한참 헤매인 끝에 드디어 단풍취라는 나물을 발견하였다. 끓는 물에 살짝 담갔다빼는 식으로 삶아서 무쳐먹든 볶아먹든 그 맛이 특별하니까 알아서 먹어 하면서 웃는다. 우산나물도 먹어보진 않았지만 나물채취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추천하는 좋은 나물이란다. 감악산 친구가 알려준대로 단풍취를 삶아서 큰그릇에 나물과 고추장을 비벼 들기름 약간 식초를 조금 넣어 아주 맛있게 먹었다. 하루가 지나고 그야말로 뱃속이 요동치더..

카테고리 없음 2021.05.08

지하다방

- 눈썹을 좀 다듬어 드릴까요? - 예? - 눈썹이 길면 젊은사람들에게 꼰대취급 받아요. - 아 예..... 어느날부터 눈썹이 길게 자라기 시작했다고 하니까 나이 지긋한 이발사는 좋은 현상이라며 몸이 건강하다는 표시라고 한다. 오랫동안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통계를 내보니 수염이나 머리카락이 자라지않으면 불과 몇달만에 지하다방엘 가더라고 가볍게 말한다. 면허증엔 1969년에 취득하였다고 했으니 50년이나 넘게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요금은 5000원. 소일삼아 용돈이나 벌려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하는데 표정이 코믹하다. 지하다방. 그곳에 가기위한 일차증상이 식욕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란다. 먹지못하게 되면 수염이고 머리카락이고 몸에 난 털이 자라나지않는다며 그려면 서서히 지하다방에 가까이 가게 되는..

카테고리 없음 2021.02.28

외도

개꿈 모처럼 막걸리를 한잔 먹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꿈결 옛집에 묘령의 여인이 찾아오고 큰 방에는 이미 돌아가신 철원 할머니가 있었지요 이 여인 아무런 말없이 이불속으로 들어와요 갑자기 마누라 친구들이 나타나요 첫마디가 딱 걸렸다고 크게 소리치는군요 여인은 옷을 주섬주섬 입더니 급히 사라졌어요 마누라는 몹시 당황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없이 서있네요 마누라 친구들이 손가락질 하며 더 난리를 부립니다 이런 꿈은 이제 안꿔도 될 나이련만 사랑이 아직도 미완성이라면 어찌 아쉬움과 미련이 없으리오 헛헛한 개꿈 그래도 미안하구료 저 길길이 날뛰는 친구들 좀 달래주오

카테고리 없음 2021.02.12

목조나신

감악산 친구집에 가는 길목 자동차정비소에 붙어있는 저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의 분단을 원인의 면에서 따져본다면 일본에 그 원초적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마디 사죄의 말도 없이 버티면서 지금도 우리를 식민지 민족이라고 깔보고 있어요. 바이러스로 사업이 어려울텐데 얼마나 분통이 터졌으면 아직도 붙여놓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한편으로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애잔한 마음이 들어요. 아주 오랜만에 친구가 거하는 거실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가족들은 다 도심에 살고 이 친구만 홀로 전원생활을 하는지라 집안은 어지럽습니다. 오래된 음반이 가득하고 명품 오디오가 설치되어있어 감상도 해보았지요. 그런데 이 목조각상이 눈길을 끌어요. 예술품이라 생각하시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1.01.23

아시타비

我是他非 참 어감이 부드럽지 않다. 물론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적인 표현이지만 너무 직설적이라서 아쉽다. 우리의 선조들은 언어의 유희를 지구상의 그 어느 민족보다도 여유롭게 즐겼다. 부드러우면서도 촌철살인의 날카로움을 배면에 드러나지않게 숨겨 상대방에게 일단 한숨을 넘기게끔 배려한다. 我美他弗 이렇게 표기한다면 불가의 신성한 주문을 욕되게 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카테고리 없음 2021.01.17

만토바의 노래

천하의 바람둥이 만토바공작은 새로 만나는 여자에게 혼신의 열정으로 사랑을 고백합니다. 내사랑은 오직 그대뿐이라는 진정어린 호소입니다. 그 감언이설에 홀딱 넘어간 예쁜여성은 그만 몸과 마음을 다 주고맙니다. 그러면 만토바공작은 또 다른 여자를 물색하지요. 언제나 자신만만한 바람둥이 공작. 또 다른 여자를 유혹하면서 노래합니다.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여자의 마음은 변덕스럽다네 눈물을 흘리고 미소를 지으며 어여쁜 얼굴로 남자를 속인다네 여자를 믿는 자 고통받고 여자에게 의지하는 자 마음을 다친다네 허나 여자의 사랑을 받지못하면 남자는 행복할 수 없다네 어찌 지구상의 모든 남자가 만토바공작과 같은 성향이랴마는 그 유쾌하기 짝이없는 구애의 사탕발림은 뭇 남성의 속마음을 가감없이 대변하는 듯한 묘한 매력을 발산합..

카테고리 없음 2020.12.24

민물장어탕

얼마나 불을 땠는지 그 커다란 장어가 다 풀어졌지요. 작년에는 비린내가 심해서 먹는데 지장을 초래하여 올해는 비린내없애는 비결이 없을까 고심을 하였습니다. 살아있는 장어에서 분비되는 진액이 묵처럼 엉겼습니다. 장어에 소금을 잔뜩넣어 한참을 놓아두었다가 빡빡문질러 진액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저 스테인레스솥에 순수한 맹물만으로 장작을 지펴 댓시간을 고았지요. 작년에는 비린내를 없애다고 생강이며 마늘을 넣고 다렸는데도 없애기는커녕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비린내가 났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첨가하지않고 진액만을 씻어낸 것 뿐인데 비린내가 없어졌습니다. 며칠동안 장어탕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비결을 찾았습니다. 강화도에 있는 장어전문가는 무조건 건강원에 맡겨 액기스를 내려먹..

카테고리 없음 2020.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