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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겨울

휴전선 부근의 도로는 온통 분칠이 되어있었다. 연이은 한파로 쌓인 눈이 뭉쳤었나 보다. 눈녹이는 화공소금을 얼마나 뿌려댔는지 대형 덤프트럭이 쌩쌩 달리기라도 하면 하얀 가루가 뽀얗게 안개처럼 퍼진다. 북방의 도로는 대로 소로 할 것 없이 하얗다. 한탄강 임진강은 눈에 덮여 흡사 거대한 백사가 꿈틀대는 듯하다. 만주 청나라 철기병은 꽁꽁 언 강을 달려 건넜다지? 큰소리만 칠 줄 알았던 인조는 그래서 천추에 씻을 수없는 치욕을 당했다지? 꼬맹이 물정 모를 적에 손발에 동상을 달고 지냈는데 아무리 기상이변이라지만 이제 그 엄혹한 추위는 자취를 감추었다. 때문에 이상한 독감은 거듭 기승을 부리는지도 모르겠다. -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 우리 속담은 아픈 가슴을 달래주려는 애틋함이 서려있는데.... "이미 골..

카테고리 없음 2022.12.30 (6)

일꾼의 ...

12월 초순 김장을 했지요. 변강쇠 닮은 젊은 총각이 김장을 돕겠다고 나타났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흙투성이 무를 씻어야 하는데 마침 잘 되었다며 밖에 있는 수도를 녹여 돕도록 하였지요. 아 그런데 맑은 물에 담긴 무의 모습이 묘합니다. "총각이 무를 빡빡 문질러 잘 씻더라니.... 그래서인가 꼿꼿하게 섰네?" 올해의 김장은 힘들었어요. 작년에 비해 지원군이 부족하고 그나마 나이 드신 분들이 주도하여 겨우 마쳤습니다. 샛별 같은 젊은 총각은 힘든 일을 도맡아 손발이 척척 맞게 힘이 되어주었지요. 그대는 내게 특별한 사람입니다. 기쁨을 안겨주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청춘의 의미를 늘 일깨워주기도 하고 그 모습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떠올라요. 아주 특별합니다. 올해도 다 지나가네요. 내내 무탈하시기 바랍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2.12.28 (1)

마늘

드디어 시작된 김장의 서막입니다. 마늘을 까라는군요. 물에 담그지 말고 마른 채로 까라고 합니다. 명령에 복종해야 뒤따르는 잔소리를 줄일 수 있어요. 겉껍질은 그런대로 잘 벗겨지는데 투명에 가까운 속껍질은 얄미울 정도로 까다로워요.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겠다고 했을 때 어두운 굴속에 들어가 쑥과 마늘만으로 백일을 버티면 된다는 말에 곰과 호랑이는 결연한 의지로 백일기도를 시작하였지만 호랑이는 불과 열흘만에 포기하고 곰만이 백일을 버텨내 인간이 되었다는 설화는 우리 시조 신화의 바탕이지요. 지조가 대단한 요조숙녀의 모습과도 같은 마늘이 있는가 하면 헤퍼도 너무 헤픈 여인과 같은 마늘도 있군요. 껍질이 하얀 속살에 딱 달라붙어 요리조리 굴려가며 어렵게 벗기기도 하고 어떤 것은 마늘쪽을 쪼개는 과정에서 저절..

카테고리 없음 2022.12.06 (9)

고구마

먼 해남 땅에서 아주 맛있는 고구마를 보내왔어요. 뜨거운 바람으로 요리하는 기구에서 달콤한 군고구마를 조리해먹는 맛이란 새로운 즐거움입니다. 분량이 대략 한 달 쯤의 간식거리로 지속되지요. 그런데 생물 고구마는 보관조건에 따라 변화가 일어납니다. 막판까지 남은 쭈글한 고구마는 겉보기엔 멀쩡한데 군고구마의 형태에서 겉과 속이 판이함을 보여줍니다. 완전히 썩어버렸다면 그냥 버려졌을 텐데 형태가 온전하니 구이통에 들어가 군고구마로 변신하고 식탁에 올려져요. 껍질을 벗기고 한입 물면 그 맛이 오묘합니다. 썩기 직전의 경계선상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맛이 꽝이고...... 조조가 닭갈비를 뜯으며 먹지도 버리지도 못했던 옛이야기가 스칩니다. 그때는 양수의 모가지가 날아갔지요. 간밤의 꿈은 참으로..

카테고리 없음 2022.12.05 (4)

표고버섯

송이가 으뜸인 줄 알았다. 재철이는 버섯 중에 으뜸은 능이라는 것이다. 능이가 어떻게 생긴 버섯인지 알지도 못하던 때였는데 그는 일 능이, 이 송이, 삼 표고라고 선언하듯 말하였다. 휴전선 근처 시골 산 아래 외딴집에서 "표고버섯을 좀 땄는데 가져다가 찌개에 넣어 드시라"며 버섯 몇 개를 투명 비닐에 담아 주신다. 바로 딴 것처럼 신선하다. 표고버섯의 맛을 처음 보는 느낌이랄까 표현 불가의 오묘한 신비스러운 맛이 감지된다. 산 좋고 물 좋고 바람 좋은 특별한 곳에서 자라나서일까? 재철이는 무수히 많은 버섯 중에 능이 송이 표고를 최고라고 칭송하였다. 30여 년이 지나 비로소 그의 말에 수긍하게 되었다. 올해의 서리버섯은 때를 놓쳐 수확을 망쳤다.

진실게임 2022.11.30 (5)

몽중유희夢中遊戱

늦가을 볕이 좋은 날 찬바람이 분다 한 시간 넘게 전철과 버스를 타고 도착한 시골집 차고 앞에 승용차 한 대가 떡하니 서있다 전화와 문자를 번갈아 보냈지만 묵묵부답 자동차를 포기하고 친구에게 작은 오토바이를 빌려 오랜만에 차량이 많은 도로주행을 했다 바람이 참 시원하다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깊은 잠에 빠졌나 보다 오매불망 그리운 님이 꿈에 보이고 애증 가득한 핀잔을 들으며 시달렸는데 깨어나니 이미 오페라 전막이 다 지나갔다 핑커톤을 애타게 기다리며 부르는 '초초'상의 애절한 아리아가 은은하게 울려 퍼질 때쯤 꿈에 그리운 님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핀잔을 퍼부었나 보다 몹시 그립다

새 카테고리 2022.11.21 (5)

천벌天罰

소주를 한잔 하자며 내놓은 안주가 청계 달걀. 나이가 얼추 늙어 일손을 다 놓았다는 그. 누군가 찾아오면 소탈하게 대접하는 모양새가 이렇다. 자칭 신선이란다.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단다. 어리석은 나는 아직도 일손을 놓지 못하고 세속을 헤매고 있다. 또 걱정이 많다. 이태원 참사로 꼭지에 오른 분노가 삭혀들 질 않는다. 귀신(雜鬼)은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하늘(백성)을 우습게 알다니 금쪽같은 젊은이 158명을 죽여놓고 저들의 하는 꼬락서니가 꼭 하늘의 벌을 부르는 것 같다.

카테고리 없음 2022.11.17 (3)

발색

간밤에 꿈을 꾸었다. 해몽이랄 것도 없이 희미하다. 말코비치가 열연한 클림트 영화를 본 탓인지 오후의 햇살을 받아내는 은행잎이 그의 황금색 그림을 불러낸다. 전과 17 범인 희대의 사기꾼이 미국엘 갔단다. 어떻게 갔을까? 의문이 증폭되고 또 증폭되어 일파만파 쌍둥이 빌딩이 테러에 붕괴된 후 철저한 신원조회로 악명 높은 미국의 법망을 어떻게 뚫었을까? 광화문 시위를 위해서라도 부디 감기 걸리지 마시고 건강하시라. 이토록 아름다운 시기에.

카테고리 없음 2022.11.14 (4)

배반背反 또는 배신背信

얼추 추스려진 듯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내내 억울하다. "국민 국민 오직 국민을 위해 진력을 다 하겠다." 무능의 극치를 보는 듯한 정치꾼들의 말에 순진무구한 국민은 그 말에 신뢰를 보탰다. 백성이 하늘이요 하늘이 백성이라는 옛말이 옳다면 오늘날의 국민은 하늘이요 하늘이 국민이다. 하늘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순수할 뿐이다. 순수한 하늘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자들이 곡필을 일삼은 언론이라면 그래서 저 무능한 각자위심의 정치꾼들이 양산되었다면 직필 아닌 곡필을 휘둔 언론과 무능한 정치꾼에 대한 하늘의 심판은 마땅하다. 그렇게 국민 국민 국민을 위한다더니 생때같은 새파란 생령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위령은커녕 조소에 가까운 표정 하며 가식의 꼬라지들에 하늘의 억장이 무너졌다. 국민을 하늘이라 여기..

새 카테고리 2022.11.09 (5)

반토막

1988년 12월 15일쯤인가 보오. 조선일보사에서 기획한 일본에 남아있는 백제문화유적답사여행에 동참할 기회를 얻어 수백 명 단체의 일원으로 부산에서 커다란 카페리 배편을 이용하여 일본 여행을 시작하였다오. 그야말로 경이로운 시선으로 일본의 산하와 그들의 일상생활을 살펴보았지요. 숙소는 2인 1실 호텔방을 정해주었는데 그때 동행이 된 사람은 70에 가까운 노인이었오. 일제강점기 때에 일본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일본어에 능통하여 저녁시간에 우리는 시장을 구경하며 산책을 하기도 했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숙소를 공유하였는데 그 노인은 뜬금없이 아주 심각한 어조로 운을 떼며 건강할 때 그 소중함을 잘 지키라고 당부하듯 진중하게 말을 건넸지요. "돈(재산)을 잃는 것은 아주 적게 잃는 것이..

새 카테고리 2022.10.2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