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9천원밖에 없는데 천원만 깍아주면 안될까?"
"......안되는데요"
"지배인 어디있어요? 지배인한테 얘기해보지 뭐"
안국동 아름다운가게
네팔인지 어딘지에서 원두커피를 가져다가 판다는데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고 어려운 나라도 돕고
기왕 커피를 사려거든 거기 것을 팔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밖에 나가는 김에 시간이되면 두어봉지 사오라는 부장님의 분부입니다
"아 그거요? 벌써 오래전일이예요"
상냥한 예쁜아가씨 생글생글 웃으며 복작거리는 바쁜 와중에도
차근하게 답변을 해줍니다
"이 롱코트 가격이 만원이라는데 지금 천원이 모자라서 그래요 천원만 깍아 주세요"
책임자인듯한 남자분이 나타나자 미간에 주름잡혀 짜증끼 풍기는 아줌마 거침없이 말을 건넵니다
순간 경멸의 눈초리가 이 남자의 묘한 표정에 서리더니 점찮고 작은 목소리로
"안됩니다"
"없어서 그러는데 9천원에 주세요"
"안돼요"
부모님 고향이 이북이라서 겨울에 가끔 짠지밥을 해먹었다며
점심에 돼지고기와 김장김치를 썰어넣은 김치밥을 해주는 군요
북한사람들은 김치를 짠지라 하거든요 그래서 짠지밥이라고 합니다
기꼬망간장에 양념을 살짝얹어 내고
날계란도 한개씩 돌립니다
단군이래 이렇게 잘먹고 풍요롭게 산 시기가 또 있었을까?
불경기다 뭐다 아우성이지만 신세계며 롯데에 가보면 미어터져요
곡물이 부족하여 푸성귀 팍팍넣어 배라도 불리자는 짠지밥이
요즘은 별미로 통합니다
밥을 먹으며 어제 본 아름다운가게의 일을 이야기합니다
"아니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값을 깍는단말예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인데?"
"야~ 그 아줌마 너무했다"
"치사하게 만원짜리를 천원을 깍아달라고? 그런 아줌마들이 백화점에 가면
깍아달라는 말한마디 못하고 바가지 옴팍쓰며 고상한 척한다니까"
"돈이 없는 사람아니지요? 돈이 있으면서 그러지요?"
어처구니 없음에 우하하하하....... 웃더니만 한마디씩 합니다
아마 백화점이라면 그 롱코트 20만원은 넘을 겁니다
그걸 척 입고서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보고 그냥 입은체로 흥정을 하는 품새였으니
옆에서 보는 그 꼬락서니 가관이 아니였어요
-차라리 그지똥구녕에서 짠지쪽을 빼먹어라-
하필 짠지밥 점심을 먹는데 생각이납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뭔 말인가 싶을 거예요
일제와 육이오를 거친 세대들의 가난이 육화된 뼈져린 비아냥의 외침이지요
"그지똥구녕에서 짠지쪽 빼먹을 년이네?"
이구동성으로 .....
모두 숟가락 놓고 나만 아직 서너숟가락 남아았는데
비위가 좋은건지.....
불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