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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사랑

jaye syo 2018. 12. 23. 20:53


마로니에의 터줏대감 이훈은 몇해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아무도 몰라요.

충신동에 있는 교회에서 잡일을 거들며 기거하다가 술버릇이 도져서 쫓겨났다고 얼핏 듣기도 했어요.

한번은 때빼고 광을 냈는지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나섰는데 교회사람들조차 몰라봤다고 그의 수려한 모습을 찬양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술 때문에 갈곳을 잃은 그는 여름엔 마로니에공원이 만만하였는지

매일 지나치며 그를 보기도 했어요.

겨울엔 그림자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를 관찰하게 된 계기는 언제부터인가 리어카를 끌고다니며 성실하게 폐지를 수집하는 모습을 보면서이지요.

그렇게 몇해동안은 인사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된 겁니다.

그런데 그놈의 술이 사단을 내고 말았어요.

여름철 무더위에 마로니에공원에 기생하던 술에 굶주린 젊은 부랑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소주에 대취해서 궁시렁거리듯 알량한 돈자랑을 한 것이랍니다.


"그래도 내 죽으면 누군지 모르지만 장례를 치룰 것이니 장례비 정도는 해놓았지"


나중에 동내 경찰관에게 들은 얘기는 충격 그 자체였어요.

공원에서 술을 같이 마시던 젊은 녀석들이 그 돈 어디있냐며 보여달라고 꼬득였다네요.

안보여주니까 거짓말쟁이라고 놀려대며 따돌림을 당했대요.

순진한 그는 엉겹결에 67만원이 들어있는 통장을 보여주고

술을 같이 먹던 젊은 놈들이 통장을 빼앗아 돈을 찾으려 했는데 비밀번호를 몰라 애태우다가

급기야 몰매를 때려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그 여파로 그만 목숨을 잃었다는 거예요.

그 심성 착한 그가 죽었다는 소식은 한달이나 지난 다음에 들었지요.

벌써 기억에서 멀어져가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술에 굶주린 그놈들......


네모리노는 아니나에게 사랑을 고백해요.

아디나는 놀리듯 그럴 시간이 있으면 읍내에 계신 삼촌이나 찾아뵈라며 핀잔을 줍니다.

네모리노는

"돈이 없어 굶어죽는 것이나 사랑에 굶주려 죽기는 마찮가지"라며 보채는군요.


- 사랑에 굶주려도 죽는다 -


아 ~~~  젊은이들의 사랑은 무모하기도 합니다.

내사랑도 굶주렸는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