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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로코코 시대의 궁정문화

jaye syo 2011. 5. 8. 21:34

예전에는 포사격장에 늘 불발탄이 남아있어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어릴적 풍경이지요

 

행여 내 그리운 님을 만나려나 일찍 서둘러 전철을 타고 용산역엘 갔지요

경부선과 호남선의 차별을 이다지도 심하게 느껴보기는 참 오랜만이로군요

그나마 뜸한 운행시간인데다가 표가 매진이라서 할수없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불발이 된 겁니다

 

이삼만

작년 년말까지 서예박물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하였다는데 그만 까맣게 잊고 있다가 놓치고 말았지요

광주전시도 이동국선생의 귀뜸이 없었던들 전혀 몰랐을 거예요

광주전시가 끝나면 제주도로 옮길 거라나요?

징검다리연휴를 간과한 결정이, 또 안일한 승차권발매에 대한 생각이 오늘의 계획을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다음주엔 토요일오후에 표를 사야겠습니다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뜨뜻미지근한 날씨의 반복에 드디어 따끈해진 햇살을 받으며 역사를 나와

역앞 철거직전의 色氣가 화려한 여자들만의 골목을 관통하여

한강로 큰길을 건너서

재개발이 한창인 토목공사장을 가로질러

박물관을 향합니다

 

 

아침 일찍 아파트를 나서는데 하얀차에 온통 하얀꽃잎이 덮였습니다

하지만 화관을 쓴 자동차는 표도 안납니다

 

휴일은 휴일입니다

전기 기차가 멀리서 들어오는데 이렇게 한산하네요 

이때만해도 어서 빨리 광주에 가서 이삼만의 글씨에 심취해보리라는 기대에 마음은 들떠있었지요

얼마나 벼르고 벼른일이었던지 ......

용산역에서 "표가 매진되었다"는역무원의 한마디에 그만 물거품이란 것이 이러한 비유였구나 하였습니다

길을 이미 나섰는데 어쩌겠어요

황사는 약간 끼었으나 그래도 여유만만한 화창한 날씨인데....

다행하게도 중앙박물관이 지척이었습니다

 

용산역에서 전철을 타면 한정거장 거리인지라 터벅터벅 걸었지요

덕분에 재개발현장을 목격하였습니다

 

오육십년대 부실한 시멘트블록으로 허술하게 지었던 서민들의 주거지는 불도져에 밀린 듯 흔적조차 남지않았지요

이곳에 뼈를 묻으려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주거지 복판에 늪도 있었나 봅니다

 

주요소도 있었나 봐요

 

여기는 그래도 흔적은 남았네요

 

 

보따리도 있는 걸 봐서는 철거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앞은 이미 재개발로 새로 지어진 그럴싸한 건축물입니다

 

그 앞에는 꼭 조형물을 세워야만 한다나요?

돈을 쫓는 예술가들만 살판난 것이지요

 

거대한 통일교회건물이 용산에 있다는 것을 오늘 비로서 알았습니다

 

소위 조경이라는 것도 아주 잘 되었지요?

아마도 이곳에 터잡고 근근히 살던 주민들은 대부분 다른곳으로 갔을 거예요

돈푼께나 있어 행세하는 사람들만 더욱 살판 난 것이지요

 

이것도 전축조례에 포함된 조형물이겠지요?

 

어떻습니까?

외형이야 근사하잖아요

이런곳에서 서민이 살기란 좀 부담이지요

 

이것도 그 조형물의 하나입니다

 

어느덧 이촌역을 지나고

 

이촌역에서 지하로 박물관까지 길을 낸답니다

 

나무에 표식을 달아놓고 몇년을 관리하지않아 속으로 파고들어갑니다

되게 아프겠지요?

 

드디어 박물관앞입니다

 

 

 

박물관입구에 있는 작은 숲입니다

 

이촌역에서부터 박물관앞 마당까지 긴 터널공사가 여기서 끝납니다

 

휴일치고는 너무도 한가합니다

 

바랑을 짊어진 저 스님 두분 말고는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없군요

 

 

베르사이유특별전에서 보았던 퐁파두르부인을 기억하시지요?

책을 펼쳐들고 있는 이 초상화는 부셰가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호화찬란하다고 해야할까?

사치의 절정을 보았습니다

 

장식품이며 생활용품까지 상류층들의 호화스런 모습은 극심한 민란을 불러오고도 남음이 있었다고나 할까

당시의 역사를 보면 굶주리는 백성들이 넘쳐났다는데....

이명박정부의 꼴이 이와 비슷한 모양새입니다

서민들은 점점 더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는데 그많은 돈을 들여 강바닥이나 파고있으니 말입니다

 

하여튼 진귀한 작품들이 101점이나 왔다고 합니다

하필 101점일까?

유신시대 얼마나 언론통제를 독하게 했냐하면 노래마져도 금지곡 투성이었어요

그때 누군가가 작곡을 하였는지 "내고향 101번지"라는 노래가 있었다네요

노래제목을 구태어 풀이하여 음란가요라는 딱지가 붙었답니다

그게 뭐 두다리사이의 그런 뜻이라나요?

웃지도 못할 지경이었죠

 

환승역입니다

돌아오는 길 역시 한산했어요

이삼만전시를 보지못해 아쉬웠지만

너무도 훌륭한 인류문화유산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