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직장에 매여 꼼짝마라이고 딸 해외나들이로 부재중이고
햇빛좋은 일요일 엄마산소 벌초에 달랑 홀로 나서서
친구집 철물점에 들러 양낫 하나 삼천원에 들고 나오는데
문간에 섯던 친구부인이 낫을 한자루 내밀며
이거 한번 사용한 낫인데 그냥 가져다 쓰세요
한자루는 불안하거든요
혹시 모르니까 가져 가셔요
일년에 한번의 벌초는
깊은 산중에 외롭게 있는 잡풀 무성한 엄마산소를 대하며
긴 한숨으로 시작하여
장장 네시간의 진을 다 빼놓고 마무리 되었다
잔나무가지를 슬쩍 칠무렵
친구부인이 건네 준 양낫의 모가지가 뎅겅 부러져
초장에 맥이 탁 풀리고
숫돌마져 챙기지않아 하나 남은 양낫 조심스레 써보지만
금새 날 무뎌져 힘만 배로 들어가지
야들한 풀조차 미끄러진다
양낫이라지만 일본놈들이 벼베기에 능률 올리려
가볍고 얍삽하게 만들었을게야
조선낫을 보면 좀 투박하지만
그 견고하고 다양한 쓸모에 새삼 가치점이 올라간다
낫 한자루를 비교해 봐도 종합기준이 일본을 누르는데
어쩌다가 일본에 통째로 멕혔을까?
술을 가끔 즐기시는 먼곳의 님을 위해
혹 서울에 오실 기회에 대접하려고
수정방 한병을 자동차에 두었었는데
엄마산소 아래에 있는 넓은 밭 참깨를 베려
늙은 농부들이 땀을 흘리기에
엄마영전에 한잔 올리기 앞서
농부들에게 한잔씩 돌렸다
술곽을 보시더니 유창한 중국어로 읽어내시기에 깜짝 놀라
어찌 중국말을 그리 잘하시냐니까
길림에서 오셨다고
중국에서도 쉽게 마시지 못하는 술을 여기서 맛을 본다며
고맙다고 치하 하신다
그 화창하던 날씨가 풀을 베려는 시점부터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벌초가 끝날때까지 햇빛을 가려 주더라
뭔 조화랴
멧돼지란 놈이 땅을 헤집어 놓았는데
포크레인이 난장을 쳐놓은 듯하다
보리똥이라고도 하고 파리똥이라고도 하나요?
멧돼지의 주둥이자국이 선명하게 나있어요
무서운 녀석입니다
산소 날개부분에도 헤집어 놓았어요
오랜만에 하수오열매를 보는군요
뿌리를 캐먹으면 머리가 검어진다나요?
고요한 바람 한점없는 산중에 툭툭 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줍는 사람도 없어요
토종밤이라서 엄청 맛있는데...
무수하게 떨어진 알밤도 주워 드시는군요
저분이 제일 젊은 분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