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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

jaye syo 2008. 4. 28. 12:35

- 곡조를 모르면 읊지를 말고 가락을 모르면 튕기들 말어.

 

녀석은 말뜻이나 알고 침방울을 튀기며 떠들어댔을까?

짜식이 뻑하면 이야기 중간을 뚝 자르고 내뱉는다.

별로 신통한 대안도 없으면서 실없이 아는척을 잘한다. 착한 녀석이.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심금을 울리듯 귀에 착 달라붙는 아름다운 선율이

저녁의 어스름한 내륙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안에 울려 퍼진다.

방송권역에서 점점 멀어진 탓에 지직소리와 함께 현과 관의 웅장한 울림이

곧 상봉케 될 예쁜 님의 모습과 상트페테르브르크 발레의 군무를 관념의 망막에 상기시킨다.  

이미 콧소리는 리듬을 타고 있는데 곡조를 모르면 읊지를 말더라고?

녀석의 코믹한 얼굴이 웃음을 가득 머금고 내내 따라오며 튕기들 말라고 주절거린다.

2막에서 짤막하게 가락을 선보이고 막 전체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조로 연주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율인데

기억의 먼곳에서 나타난 천진하고 심성고운 녀석은 때로 짓궂다.

 

차이코프스키만큼 다양한 음률을 선보인 작곡가는 흔치않다.

또 곡조가 매우 친근하다.

 

음악용어를 빌어 퉁명스럽게 쪼아대는 비유어일테지만

망각의 한계선상에 간신히 걸려있던 쪼가리를 불현듯 건져올리는 정신세계의 불가사의에 퍼뜩 놀라기도 한다.

 

아 내사랑은 거기에 있었지.

한탄강변 커다란 현무암덩이 위에도

자갈투성이 걷기 힘든 모래톱에도

천애의 절벽 전망좋은 나무숲에도

잔디가 파릇한 공동묘지 무덤가에도

미군의 포마당 주위 산딸기 군락지에도

싸리울타리 구멍숭숭한 울 넘어에도

시방 내달리는 도로의 끝자락에도

나주에도 경주에도 대구에도.......

 

백조의 호수 2막에 나오는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선율을 왜 정경이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