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트면 놓칠뻔하였습니다.
플랑의 오페라 가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는 어제(17일)로 마감되는 일정이었습니다.
전철 4호선, 2호선, 분당선, 9호선을 연이어 갈아타고 코엑스에서 어제 저녁 7시에 보았습니다.
평생을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살아야만 하는 운명의 블랑쉬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가르멜회 수녀원에 들어갑니다.
프랑스혁명의 살벌한 분위기에서 귀족들의 피난처로 수녀원이 가장 안전하다는 판단이었지요.
수녀원의 생활은 실로 엄격하여 계율을 어기면 쫓겨납니다.
신에게 의탁한 몸이지만 병든 원장수녀의 고통스런 죽음은
잊혀지는 듯한 공포가 되살아나서 블랑쉬의 내면은 혼란에 빠져요.
유일한 친구이자 마음이 통하는 콩스탕스수녀는 죽음조차 두렵지않다고 블랑쉬에게 말하지요.
우연은 그냥 우연이 아니라 이미 신의 섭리로 계획된 거라고 하는군요.
혁명에 성공한 무리들은 종교를 묵살합니다.
수녀들을 해산하고
수녀원건물을 매각하고
수녀들의 기도집회를 불허하고
만약 이를 어길시에는 사형에 처한다고 포고령을 내립니다.
새로 임명된 원장수녀가 자리를 비운 틈에
마리수녀는 수녀들에게 순교를 강요하네요.
순교를 결심한 수녀들은 몰래 기도를 올리다가 발각되어
모두 잡혀 감옥에 들어가는데 뒤늦게 이 사실은 알게 된 원장수녀가 앞장섭니다.
마리수녀는 블랑쉬수녀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머뭇거리다가
수녀들이 혁명군에게 잡혀간 사실을 알고 순교대열에 합류하려하지만 신부가 이 또한 신의 뜻이라며 만류하지요.
원장수녀를 필두로 단두대를 향합니다.
비루한 삶을 신의 뜻에 맡긴다는 비장한 각오로 한사람씩 목이 짤립니다.
마지막 콩스탕스수녀는 망설이지요.
단두대앞에서 뒤로 물러섭니다.
그때 블랑쉬수녀가 나타나 웃으며 같이 단두대로 사라져요.
인간들의 종교를 빙자한 거대한 사기는 언제쯤에나 베일을 벗게 될까요?
두려움과 공포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
이것은 신이 그렇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야만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군요.
수녀들의 수다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제약없이 넘나들며 서로를 격려합니다.
"죽음이 너를 자유롭게 할지니라"
블랑쉬의 순교결정은 아마도 이러한 깨달음을 얻어서?
"가난보다도 더한 고난이 네앞에 있느니라"
신을 선택한다는 것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아주 험한 길이라며
병이 깊어 죽음을 앞둔 원장수녀는 수녀원을 찾은 블랑쉬에게 말합니다.
고난의 길
우리의 현실에서는
신을 선택한 자들은 부귀영화를 한껏 누리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