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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김동수가옥

jaye syo 2017. 5. 24. 23:53

친절하신 해설사의 설명은 병조판서였던 할아버지가 손자 김명관을 이곳에 보내 터를 잡았다고 전한다.

당시 두섬이나 되는 엄청난 엽전을 조선 당대 풍수에 능통한 중과 함께 보냈고

그 풍수에 능한 땡중은 지내형상을 한 뒷산과 앞을 가로흐르는 냇물 건너 닭의 형상인 앞산을 보고

양택으로 조선땅에서 이만한 길지는 극히 드믈다며 터를 잡아주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나라의 법도가 어지려워져 민간에서도 아흔아홉간의 대저택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나?
















참 질긴 생명력이다

이 오래된 모과나무는 이 집 주인의 풍상을 말해주는 듯 말라 썩은 고목의 둥치에서 가녀린 새줄기가 힘차다.

어찌 어지러운 역사에서 순탄하기만 하였으랴.

 



집주위에 느티나무를 촘촘히 심었단다.

지금은 흔적으로 불과 몇그루 남아있다고 말한다.

천지가 개벽한 세월을 이만큼이라도 견뎌준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가 아닐까?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의 건축을 보았다.

조상을 모신 사당

대가족이 함께 사용한 우물

똥오줌 한방울이라도 곱게 받아낸 똥뚜깐

양지바른 장독대

격조있는 사랑채

품격을 갖춘 안채

운치있는 대문과 쪽문

......

나즈막한 건물의 아늑한 분위기는 사대부 양반의 겸양의 실천을 보는 듯 했다.

조선 대목의 꼼꼼한 솜씨를 유감없이 흠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