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컸다.
살빛도 희고 풍만하였다.
정작 얼굴은 비호감의 전형이었다.
조기축구의 백미는 청자다방에서 계란 동동띄운 모닝커피 한잔이랄까?
대철이는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좋아하던 청자다방의 모닝커피를 단칼에 끊어버렸다.
당연히 궁금했다.
"개보지 같은 년"
대철이는 뜻모를 욕지거리를 해대고는 그날부터 청자다방은 눈길도 주지않았다.
붉은 색이 감도는 황토가 풍부한 촌구석 전곡 남계리 일대는 한때 벽돌공장이 호황을 누렸다.
7, 80년대 건축이 경제의 주도권을 형성하고 있을 때 붉은 벽돌은 미쳐 물량을 대지못할 정도였다.
잘나가던 벽돌공장사장 명식은 청자다방 마담 옥분과 정분이 났다.
아들까지 낳았으니 명식의 본부인은 열불이 나서 씩씩거리며 이혼을 요구하였으나
명식은 마누라에게 무릎까지 꿇고 싹싹빌면서 그 아이는 누구 애인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떼었다.
옥분이는 어마어마한 유산상속자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모은행 서울본점에 몇십억의 현금이 예치되어있다는 증서까지 보았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
순진한 시골사람들의 심성에서는 그 소문이 낭설이라 치부해버리기도 애매하였다.
잘나가는 벽돌공장 사장 명식이가 어렵게 다방이나 하던 옥분에게 접근한 이유가 그 상속된 돈 때문이었다나?
대철이가 옥분이와 같이 잔 것도 이 무렵이었으니 옥분의 남자관계는 그야말로 난잡했던게 사실이었나보다.
비록 다방을 할망정 실속있는 부자라는 소문이 정점을 찍을 무렵 옥분은 그동안 친분을 다져놓았던
시골동내 주변사람들에게 소위 예금증서 사본을 보여주며 돈을 빌리기 시작하였는데
빌린 돈으로 고가의 선물을 사서 그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않았다.
그리고 언제까지 꼭 갚겠다고 약속하고 작은 돈은 갚고 큰돈은 아직 은행일이 풀리지않았다며 유려한 말솜씨로 미루었다.
명식은 옥분에게 몇년을 공을 들였지만 옥분의 말이 전부 사기임을 알아차리고 미련없이 떠나버렸다.
옥분이 낳은 아이는 명식의 말처럼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게 되었다.
축협사료판매장에 새 인물이 부임하였다.
그는 의정부에서 온가족이 함께 축협사옥에 입주하면서 시골 사람들과 안면을 넓혀갔는데 이름이 인철이라 했다.
인철의 부인은 아들을 둘씩이나 낳았지만 여전히 예쁘고 매력적인 여성임을 뽐내었다.
남녀간의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조신하고 예쁜 부인과 두 아들을 내팽개치고 인철은 옥분과 눈이 맞아 옥분이 낳은 아들과 한집에 살림을 차린 것이다.
인철의 부인은 인철과 합의이론하고 아들 둘을 데리고 의정부 친정근처로 갔다고 말이 났다.
옥분은 전곡 시골에 처음 나타났을 때 빈털털이 다방 레지였단다.
몇년 고생을 하고 청자다방을 인수하여 장사를 하였는데 그 자금줄이 명식이었다는 소문이고
시골의 돈푼깨나 있음직한 난봉꾼은 옥분이가 다 찝적댔다는 말이 나중에는 바람결에 떠돌았다.
시골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지 십여년 흐른 뒤 텔레비젼 뉴스에 사이비종교의 패악질이 보도되었다.
연천에서 일어난 일이란다.
죽은 사람을 생명수로 살려낸다고 사기를 쳤다나?
그런데 그 사기꾼들의 이름이 옥분이와 인철이라는 것에 실색하였다.
가믈한 옛날 옛적의 일처럼 먼 기억이 되었다.
"청계천 옥분이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부장님의 전언이다.
그 옥분이가 아님에도 왜 그 오래전의 시골 사기꾼 옥분이가 떠오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