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토종닭을 몇마리 키운지가 거의 10여년이 되어갑니다.
마당구석에 조그마한 닭장은 안전한 잠자리와 포근한 포란의 공간으로 암닭들이 알을 낳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올봄은 참으로 이상한 일들만 우리집 닭들의 세계에서 일어났어요.
겨울이 지나자 갑작스레 봄이오고 그리고 또 더위는 금새 작렬하며 뒤 따랐지요.
암닭 세마리가 서로 알을 품으려 작은 둥지에서 서로 밀쳐내며 다투고 있어
부랴부랴 둥지 세개를 만들어 각각 열개씩의 알을 넣어주고 편안하게 알을 품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심산인지 며칠 알을 잘 품을 듯 폼을 잡다가 모두 둥지를 떠나버리는 거예요.
그래도 신통하게 토종혈통의 암닭 한마리가 십여일을 넘겨 아 저녀석은 진짜로 품는구나 하였지요.
그래서 작년에 쓰던 인공부화기를 꺼내 깨끗하게 세척하여 암닭의 부화와 엇비슷하게 병아리가 나오도록 20여개의 알을 넣고 가동을 하였습니다.
매일 몇개의 알을 꺼내는 중에 암닭 한놈의 궁둥이에 뭔가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것을 발견하였지요.
아뿔사! 이녀석은 알을 낳다가 밑이 빠지면서 알집의 문이 열리지않아 알을 감싸고 있는 알집까지 쑥 빠졌구나!
아 저를 어째....
저거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살리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앞서 얼른 알을 빼주려고 이놈을 붙잡으려는데
궁둥이에 알을 매달고 요리조리 도망을 다니면서 안 잡히는 겁니다.
안타까움에 속이 타들어가는데 이놈은 약을 올리듯 좁은 우리를 날아다니며 잘도 피합니다.
이제는 약이올라 사정없이 붙잡았습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여서 젊은 직원을 불러 거꾸로 꽉잡고 있으라하고 알을 꺼내는 수술을 마취도 없이 해야했어요.
작은 칼과 가위로 알집을 째고 알을 꺼냈는데 미세하게 많은 실핏줄이 터져 지혈이 안되더군요.
할 수 없이 알콜 소독만으로 처치를 한 다음에 암닭의 운명은 하늘에 맡겼습니다.
하루에 두어번의 알콜 소독으로 쾌유를 바란다는 것이 암만 생각하여도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이튿날 닭장 군데군데 핏자국이 흩어져 있고 이녀석의 행동이 눈에 띠게 둔해졌어요.
삼일째에는 벼슬이 옆으로 고꾸라지며 색깔이 희끄무리하게 변했구요.
또 아무것도 먹지를 않아요.
심지어 물까지도.
닷새가 지났는데 비실비실하면서 물을 한두모금 먹어요.
그래서 한우 안심에서 떼어낸 기름덩이를 잘게 썰어 입에다 대주어 보았습니다.
그 맛있는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안심기름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눈만 멀끔이 힘이 다 빠져서 피하지도 못하고 꼼짝을 안해요.
일주일이 지났지요
이제는 일어서는 것도 귀찮은지 그냥 업드려만 있어요.
살기는 글렀구나! 포기상태에서 며칠이 또 흘렀습니다.
그 사이 알을 품던 암닭이 반란을 일으켜 자연부화는 실패하고
부화기에 넣었던 알들이 하나 둘 부화가 되어 병아리 열세마리가 탄생하여
격리시켰던 수술해서 다 죽어가는 암닭우리에 넣어 하룻밤을 함께 재웠는데
이튿날 아침 잘 걷지도 못하던 암닭이 먹이통에서 꾸국꾸국 소리를 내며 먹이를 쪼는 거예요.
그래서 수술했던 상처를 살펴보았더니 아주 깨끗하게 아물었고 쇠한 기력만 회복하면 되겠다 싶더군요.
닭은 위대합니다.
아니 자연속의 생명체는 다 위대합니다.
배고프다고 마냥 먹어댔다면 똥을 싸야하는데 똥을 싸면 상처가 오염되어 덧날 것이고
또 영양섭취가 정상적이라면 알집에 알이 생기고, 알을 낳게 되면 상처부위가 다시 찢어질게 뻔하고
극심한 배고품을 참아가며 그 맛있는 음식까지 마다하면서 약간의 물만으로 상처의 자연치유를 기다린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그 해롭다는 담배, 술 등등 절대로 못 끊는다고 하소연인데......
주제파악 못하고 어미노릇을 하려는 맥없는 암닭에게 회복이라도 빨리 하라고 특식을 제공하였지요.
그런데 이놈은 그 맛있는 특식을 병아리들을 불러 먹이느라 다 양보를 하는 겁니다.
저놈 살아나는 방식이 생각하면 할수록 신통방통 합니다.
한치의 빈틈없이 자기의 몸을 컨트롤 한다는 것은 거의 해탈의 경지에나 이르러서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눈에는 한갖 미물 정도의 하찮은 동물에 불과한 암닭 한마리가 그야말로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군요
닭대가리라고 절대로 천대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병아리들을 완벽하게 자기의 새끼로 인식하고 거느리더니 서서히 살아납니다.
이제는 완벽한 어미로서 열세마리의 중병아리들을 통솔하고 있어요.
기적입니다.
내일은 묻어야지 내일은 묻어야지 속으로 되뇌었는데 그것이 멀쩡하게 살아나서 저렇게 팔팔한 어미로 변신을 하다니
생명의 신비로움에 한동안 숙연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아 과연 나는 내몸을 생래적의지와 무관하게 저 닭처럼 완벽하게 컨트롤이 가능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