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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jaye syo 2014. 12. 3. 22:08

낡은 닭장에 구멍이 숭숭 뚫리면서 닭들의 보금자리는 우리동내 참새들의 낙원이 되었다.

닭모이는 참새들의 만찬으로 풍성하기가 이를데없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않아 처음엔 한두마리가 들락거리더니

지금은 온동내 참새란 참새가 들끓어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천지사방 희끗희끗 참새똥 때문에 은근히 신경이 곤두선다.

 

쥐사건이 일어나고부터는 고양이들의 출몰에 관대해져 닭장을 기웃거리거나 말거나 못본체 그냥 두었더니

언제부터인가 닭장을 수시로 드나드는 참새를 잡으려 마당 한켠에 꼼짝없이 웅크리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참새를 노려본다.

그러다가 한 보름전부터는 닭장지붕에 올라가 담장틈새로 조금 넓게 벌어진곳을 주시하며 웅크리고 있다.

한꺼번에 수십마리씩 무리지어 닭모이를 약탈해가는 참새들의 얄미운 처사에 가끔 밉기도 하여

먹이를 줄때 또는 알을 꺼낼때 쫓아내기도 하는데 다급해진 참새들의 우왕좌왕 흐트러진 판단 때문에

고양이가 기회를 노리고 있는 틈새로 빠져나가다가 가엽게 사로잡혀 고양이의 밥이되는 것을 목격하고는

어제 오늘은 고양이를 먼저 쫓아내고 참새들을 몰아냈다. 

 

참새 한마리면 하루의 식사량은 무난히 되련마는 이녀석은 금새 또 나타나서 같은 자리에 목석같이 앉아있다.

젊은 과장은 "혹시 새끼를 키우고 있는 것 아닐까요?"한다.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이 세상에 낙원은 결단코 없다. 

고양이가 참새를 잡아먹는 걸 못 보았을 때는

닭모이를 저 작은 참새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냐며 속으로 여기야말로 이놈들의 천국이구나 했다.

그런데 고양이라는 저승사자가 나타날줄이야.

 

지붕위 틈새를 노려보는 저 무서운 집념의 고양이를 보며

수주대토의 고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어리석은 송인은 전혀 가능성이라곤 없는 밭 가운데 그루터기를 지키며 눈먼 토끼를 기다리지만

저 약아빠진 고양이는 끈질기게 기다린 보람으로 어제도 한마리 오늘도 한마리 채가는 것을 보았으니

닭모이를 축내던 미운 참새가 오히려 가여워 가슴이 아리아리 하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나 저 참새의 세상이나 낙원은 없구나.

젊은과장은 "자연의 섭린데요 뭐"하고 만다.

 

요즘 나같은 서민은 꼭 저 참새꼴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꼴이 그렇다.

낙원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