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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골

jaye syo 2014. 2. 22. 00:19

날씨가 좋답니다

그래서 산엘 가야한대요

점심을 정통 이태리식 피자와 파스타로

적당량 섭취하고

정릉골 주차장에 주차를 한 다음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아주 낡은 두개의 쌍무덤이 있는 곳까지

쉼없이 올라요

이태리음식은 염분이 많아요

중간쯤 올랐을 때

목마름을 참았는데

아 물이 없는 산마루길로 들어섰네요

갈증이 심화될 무렵

숨을 고르며 황폐한 쌍무덤에 닿았지요

마음씨 고운 어느분이

탐스런 귤 한개와

사탕 한개 초코렛 한개를 양쪽 무덤에

정성스럽게 차려 놓았네요

고개숙여 무덤의 영혼에 인사를 올리고

귤을 까먹고 초코렛과 사탕을 또 맛있게 먹어줬어요

심한 목마름이 싹 가시면서

뱃속까지 편안해지는 것이

이것이야말로 하늘님의 축복이라 여겼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발걸음이 가벼웠어요

 

이 무덤은 수백년은 넘어

조선초기의 지방 토호의 무덤같아요

봉분은 다 무너져 흔적만 남아있는 형태이고

아람드리 참나무가 봉분 바로 앞에 버티고 있는 걸 봐도

이미 버려진지 200년 정도로 추정 가능하고

이 정도의 무덤이라면

수대에 걸쳐 관리가 되었을 것 역시 짐작 됩니다

직계 자손은 아니라해도

수백년간 핏줄은 얼키고 설켜

저 마음씨 고운분의 조상이 되기도 하려니와

내 조상이기도 할 겁니다

이렇게 논리를 전개하다보면

우리는 모두 같은 혈연으로 한 가족이 되고 말지요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에프게니 오네긴을 또 보려고 갔다가

예쁜 직원이 보기와 달리 까탈스러워

두번이면 됐지 세번을 본들 뭐하랴

가볍게 발길을 돌렸어요

무덤에 차려진 과일과 사탕을 먹었다고

혼백이 노한 것일까? 

아니 오페라를 보았다면 자정이 넘어 끝이나는데

산행도 했고하니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혼백의 배려에서 그리 되었으리라

마음 편합니다

 

아주 기분 좋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