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예술극장
2013. 12. 5. 목요일 오후 7시 30분
아마 스무살 전후해서 햄릿을 접한 것이 오랜 세월 두고두고 회상되며 영화와 연극으로 수없이 되만나게 되었지요
EBS에서는 불과 보름전쯤 심야에 로렌스 올리비에가 주연을 한 햄릿을 올려서 세심하게 보았기 때문에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햄릿을 관심있게 주목하고 있었는데 예상치못한 기회가 주어져서 만사 제치고 보게 되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연극은 기본적으로 대사 즉 언어에서 치열한 연기가 중추를 이루는 이야기극입니다
고뇌하면서 끊임없이 뇌까리는 햄릿의 중얼거리듯한 길고 긴 대사의 맛을 살리기란 웬만한 배우가 소화하기는 쉽지않습니다
역시나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속설이 입증되는 날이었습니다
명동역에서 6번출구로 나와 명동 안쪽 거리를 쭉 내려가면 예술극장이 보여요
공연 2시간전부터 표를 바꿔준다는 안내에 따라 좀 일찍 바꾸면 자리가 좋을 것같아 서둘었지요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날 명동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방불케 합니다
수천킬로미터가 떨어진 곳까지 날아왔으니 많이 희석되었을 터인데도 목이 칼칼하고 시야마져 흐릿한데
중국본토의 상황은 대체 어느 정도 심각한 수준일까 걱정이 됩니다
화려한 명동거리에서는 중국말이 가장 많이 들리는군요
시간이 많아서 유니클로매장엘 들어갔어요
1층에서 4층까지 그 커다란 공간을 다른 곳도 아닌 명동의 노른자위에 확보하고 유지한다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하나의 상표로 그 넓은 매장을 다 채울 정도로 다양한 옷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구요
명동 불빛은 휘황찬란하고 곧 다가올 성탄절의 기부 모금 구세군 브라스벤드가 거리 한복판을 점령하여 방방대는데
사람들은 총체적 경기불황과는 걸맞지않게 풍요롭고 매우 활발합니다
거리의 이동식 오픈 매점에서는 석류 생즙을 즉석에서 짜내고 있어 바라만 보아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더군요
작은 비닐팩에 석류 한개 분량의 즙을 담고 빨대를 꽂아 4000원에 팔고 있어요
당연히 한개사서 맛을 보았지요
맛이 새콤달콤떫콤 황홀합니다
무대의 꾸밈이 새롭습니다
볼거리에 비중을 더 두었군요
정보석 김학철 등등 무게있는 중진배우들이 연기력을 한껏 살려가며 극을 본격적으로 진행합니다
망령을 연기하는 배우는 아예 알몸으로 등장하네요
야 뭔가 찐한 감동이 예상되는 극의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그 진지하고 격렬한 연기에 비해 원작의 깊고 의미있는 대사들이 생략되고 있다는 걸 금새 눈치챘습니다
아 햄릿이라는 연극의 중후한 맛을 순화시켜 쉽게 가려 하고 있구나
한 인간의 방황과 번민과 고독한 의지를 오로지 복수라는 하나의 관점으로 귀결시키는구나
그 빈공간을 과한 행위로서 메꾸고 있구나
하기사 세익스피어의 원의를 그대로 살린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의 영역인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말하는 소위 정통연극에도 얄팍한 상술이 습합되어 있는 것 같아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현란한 무대장식으로 또는 사람을 홀랑 벳겨서 관객의 이목을 돌리려는 .....
퓨전도 아니고 정통도 아닌 어정쩡한 ......
무대 장식의 참신함에는 아낌없는 칭찬을 보냅니다
연기의 열정도 훌륭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