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비처럼 가느다란 빗방울이 흩어지듯 날리는 시간
우산 한개 챙겨서 길을 나섭니다
종로 5가 지하상가에 도착하기전부터 굵어지는 빗방울
설마 물폭탄으로 돌변할줄은 짐작도 못하였지요
쏟아지는 비를 피해 전철역 지하상가는 만원을 이룹니다
원래는 재래가마에서 구워낸 사기그릇을 두어개
그리고 시원한 바지와 통기가 잘되는 윗도리를 한개씩 사려고 하였지만
일단 비를 피하는게 우선인지라
비교적 가끔 들리는 가게집 문을 열고 들어갔지요
주인은 반색을 하며 차를 권합니다
"이십대에 이혼을 하고 칠십이 넘도록 혼자 살았는데 지금도 남자라면 지긋지긋해"
"아니 어떻게 혼자 사셨어요?"
가게집 주인은 뚱뚱한 할머니의 생뚱스런 말씀에 왜 이혼을 하셨느냐라는 물음을 완곡하게 돌려 묻습니다
"멋 모르고 대구 부자집 외동아들과 결혼을 했는데 내가 판단을 잘못한 것이지요"
"왜요?"
"이 남자가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거예요"
주인이 권하는 찻잔을 들고 가게집 진열대에 늘어놓은 상품들에 눈길을 돌리며 할머니의 말씀을 모른척 듣고 있었지요
"입만 열었다하면 거짓말예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요 거의 매일 딴 여자랑 자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리고 또 거짓말로 얼버무리는데 그 뻔뻔한 얼굴이 치가 떨릴 정도로 밉더라구요
그래서 하루는 제발 솔직하게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하고 못산다 하였더니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여 부아통이 더 터져 결국은 이혼하고 말았어요"
"아니 거짓말 안하고 솔직하게 말하는데 이혼을 해요?"
"기가 막혔지요 바람피우는 것은 여전하구요 이제는 집에 들어오면 어제밤에 어떤여자와 자고 왔는데
그 여자는 뭐가 어떻고 뭘 잘해주고 미주알 고주알 다 말하는 거예요 더 열 받잖아요
시어머니는 조강지처인 나를 너무 무시하고 ..... 어떻게 살겠어요"
곁눈길로 슬쩍 할머니의 표정을 살폈지요
"아이는 없었어요?"
"돌 지난 아들을 끌어안고 나왔어요 그 집에 남겨놓으면 배우는게 난봉질뿐일 것 같아 도저히 두고 나올 수가 없었지요
친정에도 갈 수 없고 객기를 부려 이혼을 하였지만 여자 혼자 살기가 막막하여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입양 보냈어요
그리고 모진 고생을 하며 힘겹게 살았지요 해 놓은 건 하나도 없고 나이만 먹은 것 같아요"
전화벨이 울립니다
빨리 들어오라는 전갈입니다
할머니의 인생역정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는 순간에 .......
종로에 사는 사람들의 고단하고 부지런한 삶은 이들의 진술이 없다면 도저히 눈치조차 챌 수가 없습니다
비오는 날은 참 우울한 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