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엷은 운무층을 뚫고 열기를 증폭시키며 기승을 부리는 오전에 길을 나섭니다
긴팔의 옷을 여지껏 고집하다가 반팔의 차림이었지요
이 많은 벌들은 갑자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시커먼 왕벌도 있어요
벌들의 부지런함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전철 한개를 놓치고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요
시청역에서 내려 덕수궁쪽 출입구로 나와 대한문에 다달았습니다
한심한 꼬라지를 보아야했습니다
저기가 뭐라고 치안인력이 부족하다는 경찰들을 동원하여 하릴없이 에워싸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위적인 화단으로도 모자라는 모양이지요?
덕수궁 담길을 따라 시립미술관으로 들어섶니다
퇴계의 집터임을 알리는 표석이 반깁니다
위쪽으로는 김장생과 대동법을 반대하였다는 그의 아들 김집이 살았던 터라는군요
3층 관람을 하는데 커다란 포스터가 걸렸습니다
고갱은 증권거래소에서 일을 하다가 35세무렵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합니다
십대후반쯤 앞집 종배는 어디서 빌려오는지 종종 내게도 읽기를 권하며 귀한 책을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달과 6펜스를 보았을 거예요
고맙게도 그 친구 때문에 예민했던 그 시기에 많은 책을 읽은 것 같아요
고갱은 내머리속에 희미하게나마 그려진 것이 그 소설 덕분이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친구이지요
소설속에서도 고갱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그의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습니다
가난에 허덕이고 말년의 고난은 자살을 시도할 정도의 고통이었지요
그의 영혼의 세계가 화폭에 담긴 것 같더군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갈 것인가?
그의 명제는 과연 풀렸을까?
미술관을 나오니 이지경이었지요
날씨가 좋다고 우산은커녕 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분명 일기예보에는 오늘 엄청 비가 올거라고 했지만 아침의 쨍한 날씨를 보며 "엉터리"라고 속으로 콧방귀를 뀐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