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첫장은
-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배워 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하는 자 먼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라고 쓰여있다.(논어한글역주)
이것은 분명히 공자님께서 노년에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하신 말씀이라고 추정된다.
11월 16일 수요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라벨 - 어릿광대의 아침노래
호소가와 토시오 - 호른협주곡 꽃피는 순간
브루크너 - 교향곡 제9번
당일 경향신문에 난 기사를 읽고 컴퓨터 검색을 하고서야 베를린 필의 공연이 있다는 걸 알았다.
아침부터 간절한 소망처럼 '아 ! 이 공연을 감상할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였다.
15일엔 예술의 전당에서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을 연주하였다고 대단한 찬양과 함께
지휘자 사이먼 래틀에 대한 칭송이 화려한 미사려구를 동원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었다.
궁색한 핑계는 점심을 늦게 먹어 저녁생각이 없으니 그냥 퇴근하겠다는게 고작이었고
마음은 벌써 베를린 필의 공연에 홀딱 빠져서 발길은 무작정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한다.
티켓박스에서 남아있는 표를 알아보니 45만원과 40만원짜리만 있단다.
하마트면 소위 젊은이들의 유행어인 지름신이 강림할뻔 하였다.
간절히 원하면 길이 보인다고 우여곡절끝에 3층 꼭대기 중간쯤의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스스로 자만하면서 좋은 자리에 대한 미련을 억지로 떨치며 불과 몇만원의 비용으로 놓칠뻔한 귀한 공연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았다.
허접한 프로그램을 거금 만원을 주고 사서 미리 천천히 읽어보기도 하고 공연전에 브루크너의 강렬한 선률을 떠올려 보기도 하였다.
안내책자에 소개한 말러와 브루크너의 교향곡에 대해 하나같이 죽음의 교향곡이라는 의미의 해석이 곁들여져있고
심지어 한스 폰 뷜로의 말을 인용하여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환희의 송가"라면 브루크너의 9번은 "불행의 송가"라는
음울한 표현을 아무런 꺼리낌없이 친절한 프로그램 지면에 나열하고 있다.
브루크너는 생의 막바지에서 심혈을 기울여 교향곡 9번에 매달렸다.
안타깝게도 슈벨트처럼 미완성의 3악장 작품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많은 비평가들이 모짤트의 레퀴엠을 들어 말러나 브루크너도 죽음에 임박하여 작품을 썼기 때문에
뷜로의 "불행의 송가"라고 한 말을 여과없이 인용하는 우를 범한다.
그러나 편견없이 고요한 마음으로 들어보라.
지나온 인생을 정리하고 회고하는 브루크너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1악장의 차분하고 잔잔한 선율은 유년시절의 어리숙하고 철없는 아름다움을 아련함으로 풀어낸 회한이 묻어나지만
2악장의 장중하고 힘있는 선율은 장년의 열정을 베르그송이 말하는 엘랑비탈에 견주어 표출한 것이리라.
3악장은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맛보고 차분하게 지나온 자취를 재조명해보는 분위기라면 어떨까?
그는 분명 천국을 꿈꾸었을 것이다.
가 보지못한 천국을 꿈꾸다가 결국 4악장을 써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베를린 필의 브루크너에 심취하고는 그 여운에
공자님의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온 不亦君子乎?리는 말씀이 절로 겹친다.
브르크너의 내면의 삶은 결코 후회없는 충만한 희열로 가득하였으리라.
사이먼 래틀은 최고의 음의 조련사였다
아 하 ~ 원을 풀었다
버스에서 내려 공연장을 향해 광화문광장을 가로지르며...
야경도 그럴듯 합니다
연주가 다 끝나고 래틀은 단원들 사이를 다니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요
우뢰와 같은 박수에도 아랑곳 그 흔한 앵콜곡 하나 없이 퇴장을 서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