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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암

jaye syo 2011. 9. 5. 23:36

느지막하게 막걸리 한병과

두부 한모를 비닐봉다리에 넣어 달랑 들고

긴 계곡을 따라 느리게 걷는다

오후 두시면 천축사 점심공양이 끝나지만

심성 고운 공양주보살님은

국이 떨어지고 반찬도 두가지뿐이라서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시고 

밥은 남아있으니 드시려면 드시란다

반주걱의 밥과 무우채무침, 오이무침을 한그릇에 담고

멀건 국물뿐인 냉채 한그릇을

식탁으로 옮겨 맛을 음미하며 먹었다

 

샛길로 돌아 오르는 중

예전에 맛있게 마시던 샘물가에 다달아

한컵을 떠서 벌컥 마시고

땀에 쩔은 웃옷을 벗어 샘물로 흠뻑 적셨다

지나던 산객들이 물을 마시려다

음용불가라는 팻말을 보고

입맛을 쩍 다시며 발길을 돌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또 한컵 떠서 맛있게 마시고

한굽이 올라서자 펑퍼짐한 마당바위

산꾼들이 붐빈다

저 바위는 성모를 닮아

이 마당바위

수녀님들의 수행코스가 되고

남산을 중심으로 서울의 동쪽 풍경을 조망할 수있는

흔치않은 쉼터가 되었다

 

조금만 올라가면 관음암

우연히 만난 시골 동내사람은

그 먼길을 기도의 일념으로 자주 찾는다며

영험한 곳이라서 소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고

이곳에서 빌었더니 가정이 화목해지고

아이들도 다 잘되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환한 얼굴로 반갑게 맞는다

인형처럼 돌로 깍아만든 오백나한이 좌정한 곳을 지나

산신각 앞 거대한 바윗덩이 아래에서는

또다른 서울의 풍경이 펼쳐지고

나뭇잎사이로 간신히 모습을 드러낸

만장봉 자운봉은 순두부덩이가 잘려나간 듯

속살 부드러운 느낌으로 서있다

 

남편을 죽이는 여자들의 심정을 알겠어요

벌레가 대드는 것 같아요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것이 있다면 사정없이 내리치고 싶더라니까요

너무너무 보기 싫어요

 

옹기종기 앉아 한담이며 한탄이며 잡담을 조잘대는

아낙들의 탄식이 무심한 귓가에 스치고

이들의 기도는 과연 원하는대로 이루어질까?

비닐봉다리 열고

두부를 펼치고

챙겨간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뤄

한잔을 쭉 들이켜고

속세를 한번 굽어보고

층층구름 올려보고

시원한 속 쓸어내리며

한잔 하실라우?

옆에 좌정한 중년의 부부를 향해 권하기도 하고

아 이 부부는 참 편안한 세월을 보냈구나

이렇게 곱게 잔주름이 생길 수 있다니

 

천년의 대선사기도처는

가엽게도 어느덧 속세의 놀이터가 되었다

 

세상을 향해 찡그리지 말아라

그리하면 세상은 너를 향해 찡그린단다

 

키플링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