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숫닭은 우아한 바람둥이다
수많은 암닭을 거느리고 느긋하게 마당을 거닐다가
모이를 쪼는 암닭의 예쁜궁둥이만 보면 쪼르르 달려가 발로 꽁지털을 살짝 건드려 본다
암닭이 곧바로 주저앉으면 이녀석 올타꾸나 당당하게 씨를 퍼트린다
이녀석의 습성을 오랫동안 살폈는데 행동이 아주 굼뜨다가도
쌩뚱맞게 쌀쌀한 새침떼기 암닭에게는
은근하게 살금살금 다가가 번개같이 대가리를 쪼아 제압하고는 기어이 욕망을 불사르고야만다
그리고는 회심의 날개짓을 펄럭인다
儒學의 최대관심사는 무엇일까?
공자님의 회고에도 나타나듯이 仁과 好學을 최고의 덕목으로 제자들을 통해 후세에 남겼다
동양의 학문이란 그 바탕이 漢字이기 때문에 우선 한자의 의미를 터득하려면 쉼없이 달달 외울 수 밖에 없고
또 漢字를 익히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무조건 끊임없이 써보는 것인데
이삼만의 생애는 공부의 기초인 漢字쓰기에 평생을 받쳤다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지인께서 보내주신 도록을 펼쳐보는 순간 그 필치에 놀라
창암의 글씨를 꼭 봐야겠다는 욕구가 일어 어렵게 시간을 안배하여
광주박물관에서 전시중인 그의 글씨를 감개무량한 포만감으로 감상하였다
결정적인 정보는 광주에 사시는 평소 존경하는 박선생님의 제보에 의한 것이어서
그 고마움에 보답코져 식사라도 대접하려 하였는데 오히려 융숭한 접대를 받아 죄송스런 마음이 앞선다
창암의 생애에 대해서는 기록이 별로 없을 뿐더러 구전되는 것조차 남아있지않아
유품인 글씨를 통해 심성을 헤아려 그의 삶을 유추해 볼 수 밖에 없다
단편적인 정보로는 아버지가 뱀에 물려죽는 바람에 뱀을 보기만 하면 물불을 안가리고 때려죽였다는 것
또 이름난 기생 심녀와의 깊은 사랑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는 일화가 회자되고 있다
일단 그의 고집과 집념이 남다르다는 정황을 그려볼 수 있겠다
필획을 살펴보면 다양한 필법을 구사하여 나름의 독특한 서법의 경지에 이르렀고
무려 세개의 벼루가 닳아 바닦에 구멍이 났다할 정도로 글씨에 몰두하였으니
禪으로 득도한 고승 못지않은 품격높은 깨달음이 그 인품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물 흐르는 듯한 필선에서 느껴지는 그의 인품은 儒家의 최고경지라 할수있는 從心所欲不踰矩의 無碍行을 보여줄 뿐만아니라
그의 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 대가 끊겼다는 사실로도 탈속의 여유를 홀로 만끽하였다할 수 있겠다
혹독한 가난을 글로써 견뎠을까?
그럼에도 일평생 愼獨의 실천으로 상당한 존경을 받았음이 드러난다
글씨가 무르익을 무렵 이름을 규환에서 三晩으로 바꾸는데
그의 심상에는 겸양과 자만이 가득함을 짐작하겠다
스스로 말했듯이 학문과 출사 저술을 이루지못하였다는 자신을 낮추는 의중을 내포하기도 하고
이제야 비로소 서법에 일가를 이루었다는 자긍심이 삼만이라는 이름에서 엿보인다
노자에 大器晩成이란 말은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항간의 해석도 있으나
스승의 가르침에 따르면 "큰 그릇은 이루어진 것 같지가 않다"라고 풀어야 맞다고 하셨다
도록의 설명은 삼만이란 '학문 출사 저술이 늦게 이루어져서 자신의 이름을 그리 고쳤다"라고 하였는데
잘못된 설명임을 사족으로 밝힌다
삼만으로 이름을 고친 뜻은
"세간에서는 나에 대해 학문 출사 저술이 미비하다고 말할지 모르나 나는 이미 다 이루었다"라는 자긍심의 발로일 것이다
창암의 글씨에서 그의 유학을 기저로 이룬 심오한 정신세계를 발견하였다
반가움에 들이킨 막걸리 한종지에 취해 상경시간을 놓쳐 오후의 일이 빗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매우 의미있는 날이었다
박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집 숫닭은 여전히 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