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하두 청량하여 마로니에공원을 느리게 걸었습니다
은행나무를 둘러싼 긴의자에는 제법 사람이 많아요
한쪽에서 서투른 목소리의 노래소리가 긴여운을 남기자
여기저기서 환호의 박수와 마지못해 치는 박수소리가 불협화음으로 울립니다
길 건너 서울대병원을 지나
소방서옆 골목길로 들어서 생소한 낯설음에 그대 모습을 떠올려요
천천히 빙글돌아 제자리 큰길로 와서
초등학교 울타리 마로니에 나무에 활짝 핀 꽃을 보며
가을이면 밤톨만한 열매를 툭툭 떨구겠구나 상상합니다
이화동사가리 건널목을 건너요
공영주차장 골목길을 따라 이화장을 향한 주변에
오래된 민간 한옥은 참 볼품없이
누더기를 걸치고 손도 못댈 처지에 이르렀네요
삼사층 붉은 벽돌집에 가려
그 화려하던 옛모습 초라하기 그지없어요
한옥을 보존한다구?
허울만 좋은 말잔치에 불과하지요
내 눈은 옛 것에 길들여져 있나봐요
오월이 반쯤 지나고 일년이 반쯤 또 지나고
내년엔 저 골목길 어디 쯤 허름한 집을 한 채 사야겠어요
제발 재개발소리가 나오지않기를
골목 양지바른 언덕이 남아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