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힘께나 쓰고, 일 잘하고, 허우대 번듯하고 매사 근면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호감이 가지요.
쌀집주인에게 심심찮게 중매의 청이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서울생활 몇년은 눈높이를 한껏 올려놓고 말았어요.
주인의 권유로 마지못해 맞선을 몇번 보았으나 내키지않아 미적거리던 중 예쁜 규수가 나타났습니다.
남의 집 점원인 주제에 결혼식이 가당키나 한가요?
주인이 마련해준 변두리 자그마한 집에서 그냥 살림을 차렸지요.
"그런데 별 재미없읍디다."
그 무렵 쌀집주인인 일본사람이 중풍을 맞았어요.
바깥출입이 불가능 했습니다.
하루는 안채에서 부른다기에 갔더니 편지를 써주며 일본엘 다녀오라는 겁니다.
상세히 일러주더군요.
-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면 관부연락선을 타라.
일본에 도착하면 사람이 나와있을 게다.
그 사람을 만나서 편지를 전하면 그 사람이 알아서 다 할 것인즉,
너는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일이 다 성사되었을 때 이 돈을 건네주고 그 사람이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
쌀집주인의 가게는 표면상으로 조선에 나와있다는 명분을 위한 것이었고 실상 군수물자 무역으로 떼돈을 벌고있었습니다.
말 한마리에 10원을 주고 사서 부산까지 실어다가 부산에서 만주행기차에 태우기만 하면 7~80원을 받는다는 것이었지요.
주문량에 따라 100마리에서 200마리를 한번에 거래하였는데
일본에 다니면서 돈버는 요령을 터득하고 심부름을 착실하게 잘 하니까 이익금을 절반 뚝잘라 주더라는 겁니다.
삐까번쩍한 양복으로 쪽 빼입고 기생집을 드나들기 시작하였지요.
하! 고것들 살살 녹이더만요.
이쁘고 아주 살살대는 년에게 살림차려주랴 하니까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집을 한채 마련하여 작은집 생활을 하였지요.
큰마누라는 뚝뚝한게 영 정이 안 가더라니까요.
짧으면 한달만에 헤어지고 길어야 3년이었지요.
정을 주고 살만하면 주머니를 뒤지고 금고의 돈을 살금살금 빼내더라는 거예요.
그도 아니면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더라는 겁니다.
그러면 오만정이 싹 달아나더래요.
그래서 마누라를 얻고 버리고를 무려 삼십명씩이나 그랬다네요.
쌀집주인은 결국 일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자 모든 것을 오씨에게 넘겼습니다.
오씨는 땅집고 헤엄치는 식으로 돈을 긁어 모았고 또 물쓰듯 하였어요.
별별 사기꾼들이 꼬여 들었지요.
광산에 손을 댔다가 쫄딱 하기도 했고 사기도 많이 당하면서 세상을 배워나갔습니다.
어느덧 해방을 맞고 육이오를 거치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야했습니다.
요지에 땅을 많이 사놓았는데 큰마누라에게서 난 자식이 노름에 손을 대더니
급기야 땅문서를 훔쳐다가 그 많은 땅을 노름으로 탕진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은대리 벌판에서 마지막까지 같이 살던 오씨 마누라는 말하더군요.
- 이놈의 영감탱이가 얼마나 의심이 많은지, 어디에 땅이 남아있는지 돈이 얼마나 있는지 말을 안해요.
20년을 넘게 같이 살았지만 얼마나 구두쇠인지 생활비며 공공지출비 등을 일일이 타서 써야한다니까요.
큰아들이 땅을 몽땅 날렸다지만 아직도 영감앞으로 땅이 많이 남아있는데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통 알려주지 않아요.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저러다가 덜컹 죽어자빠지면 어떡해요.
수심에 가득찬 오씨마누라의 그 선한 눈빛이 또 당부를 합니다.
- 이런 이야기 했다고 영감이 알면 난리나요.
불가에서 전하는 업보란게 꼭 있는 것만 같아요.
재산목록 1호인 소를 뚱쳐다가 자전거를 산 죄로 집에서 추방당하여
객지를 떠돌며 장가들어 난 자식이 어려운 세파를 헤치며 모아놓은 재산을 몽땅 뚱쳐다가 노름으로 탕진하다니......
오씨는 덤덤하기만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