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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

jaye syo 2009. 12. 27. 09:08

장마철도 아닌 볕 좋은 8월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탓에 관광객이 뜸한 어느날

카메라를 둘러메고 밀집모자를 가볍게 눌러 쓴 허우대좋은 사내가 경내로 들어오는 것을 본 경화는

몸 속 깊은 곳에서 미세한 경련이 저주스런 욕망인양 솟구치는 것을 감지하고

이내 부질없다 여기며 본연의 자세로 쪽창을 열고 해설 해드릴까요? 인삿말을 건낸다

 

쥐꼬리만한 급여지만 해설사라는 일을 시작하면서 그가 태어나고 자란

나름 잘 안다고 자부심을 놓지 않았던 고향에 대해 너무도 무지한 자신을 한심하게 돌아보았다

이미 굳어버린 머리를 쥐어짜며 안내책자에 쓰인 내용을 달달 외느라 쌩고생을 하고

관광객앞에서 떨리는 심정을 숨기느라 억지로 미소지으며 문화재의 내력을 설명하였다

그럭저럭 칠팔년이 지나면서 내공이 쌓여 이제는 어느곳 어느지역 탑이며 무덤이며 눈감고도 술술 풀어진다

 

남편과 이혼하고 살길이 막막하여 작은 음식점을 열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였다

불쑥 찾아드는 남자에 대한 욕구를 이를 악물며 고된 일로 상쇄해 보려는 몸부림이었으리라

여우같은 년과 재혼하려고 끈질기게 이혼을 요구한 남편과 한 동내여서

남들에게 얏잡아보이기싫어 밖으로는 표나지않게 조심하고 조심하였다

천형처럼 불거지는 본능의 욕구는 너같은 인간은 다시 보지않겠다는 하늘같은 자존심마져 무너뜨려

그래도 애들의 아빠라며 술취해 나타나는 그를 품어야했고 못내 기다려지기까지 하였다

남들은 폐경즈음에 벌써 남자생각이 잦아든다는데 도저히 참을 수없는 날에는 아무놈이라도 걸렸으면 하고

한없이 밤길을 헤메며 남편을 원망하고 또 눈물로 갈망하는 자신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삼년간의 식당일은 손님이 너무 많아 매일 매일 쉴새없이 일에 치어 덜컹 병이나고 말았다

내 일은 이게 아니구나 싶어 정리하고 몸을 추스린 다음 일이 좀 수월할 것 같은 꽃가게를 해보기로 작정하고

무작정 시작부터 하였는데 이게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였다

조금만 방심하면 시들고 잘 팔리지 않는 날에는 떼어놓은 아까운 꽃들을 다 버려야했다

교육자집안에서 성장한 심성 고운 경화는 차츰 꽃에 매료되기 시작하여 장사의 요령을 터득하였다

오전에는 제값을 받고 오후에는 후하게 인심을 쓰는 전략인데 손님들의 마음을 잡았던 것이다

여자 혼자서는 벅찬 일이 되었다

그 불같았던 본능이 잦아들기도 하였고 꽃의 생리를 알고부터는 마음도 평온하여 천직이려니 하였는데

흑심을 품은 치한이 나타나는가 하면 급기야 칼을 든 강도가 침입하여 눈물을 머금고 꽃집을 접어야했다

그리고 도전한 것이 지금의 문화해설사라는 직업이다

이제야 진정한 삶의 보람을 찾은 것 같아 방통대에도 진학하고

지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결하려 만학에 도취되어 시간이 모자란다는 밝은 표정의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설레임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얄궂게도 안정된 가슴을 뛰게 하다니

종종 있었지마는 그걸로 끝이었는데 저 무심한 사내의 모습은 아련한 통증으로 목구멍에 갈증을 그리고 있다

경화는 뜨거워지는 입김을 남모르게 삼켰다

몹쓸인간 어쩌다 일시 가산이 기울어 중매로 만나 살게 되었다만 천한 성품이 여실히 드러나고야 말더군

저 여시같은 년이 어디가 그렇게 좋을까?

처자식 다 버리고 찰싹 달라붙어 정신 못차리게

 

남편과의 잠자리는 늘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감창 때문에 처음엔 좋다던 남편이

두 아이가 태어나 자라나면서 불시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하마트면 죽을뻔까지 하였던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이게 챙피한 일이었을까?

 

저 사내 눈치도 없다 

염병헐 늠

까닭없이 섭섭한 속을 달래며 상냥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