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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희

jaye syo 2009. 12. 25. 10:24

소싯적에 세익스피어전집을 통독하면서 나홀로 미소를 지으며 희곡의 즐거움에 푹 빠지기도 하였는데

엇그제 변영로선생의 명정40년을 읽으면서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참지못하여 홀로 크게 웃었다

행여 누가 보았다면 분명 실없는 놈이라 했을게다

 

수주의 술은 주선의 경지에 다달았다고 다들 말하지만 본인의 자술(自述)은 주선은커녕 실수연발의 웃음보를 선사한다

 

명희는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다

시골인데도 어려서는 모르고 지내다가 장성하여 호구지책으로 작은 가게를 열어 장사를 시작할 무렵 

그가 손님으로 와서야 비로서 알게 된 좀 기이한 인연이었다

수주만큼은 따라가지 못한다해도 명희의 주량에 대적하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데

역시 술이란 많은 말썽을 유발하는 쓸데없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느날 통금시간이 지난 깊은 밤 누군가가 문짝이 부서져라 차고 두드리는 통에 나가보니

명희의 동생이 급하다며 집에 있는 돈을 있는대로 싹싹 긁어달란다

 

지금이야 미끈하고 근사한 길이 새로 놓인 큼직한 다리를 통과하지만

예전에는 청산에서 고문리로 통하는 길은 한탄강의 단애가 비스듬이 깍인 곳으로 구불구불 가파르게 나있고

엔간한 비에 조금만 물이 불어도 잠겨버리는 시멘트 콩크리트 좁다란 임시 교량에다가

북한군이 탱크를 몰고 쳐들어 올 경우를 대비하여 일명 탱크저지선이란걸 비탈길 좁은 곳에 만들어 놓아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전형의 시골길이라 해야할까?

그날도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퍼 마시고 모두가 만류하는 것을 일언지하에 물리친후

일명 *과부틀을 타고 호기좋게 집을 향하던 중

한탄강을 건너는 비포장 험한 내리막길을 냅다달리다가 살짝 굽은 곳에 설치된 탱크저지선 암벽에 정면 충돌하였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입고 성모병원에 뛰어가보니

얼굴과 목이 퉁퉁부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험상궂은 모습으로 선지처럼 굳어진 핏덩이를 쏟아내며 간신히 숨을 내쉬는데

속에선 절망의 탄식이 절로 나오고 고통스런 그의 마지막 모습을 최후로 보는 것 같았다

여기서는 안되니까 서울 큰병원으로 얼른 가서 치료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시골의사의 말에

신새벽 허름한 엠뷸런스에 실려가는 것을 만감이 교차하는 착찹한 심정으로 바라보다가

푸르른 여명과 함께 맥빠진 걸음으로 귀가하면서 하늘님 제발 그를 살려주소서를 텅빈 하늘을 향해 되뇌었다

 

두달이 지날무렵 그예 호방한 표정으로 불쑥 나타난 명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얼굴쪽 두개골이 금이가서 철심을 박았다며 나중에 사고경위를 전해 듣고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병원에서는 퇴원불가라는걸 좀이 쑤시는 갑갑증 때문에 못이겨 나왔다는 것이다

오토바이와 더불어 나뒹굴어 정신을 잃고있은 것을 지나가는 군용차량이 발견하여 천행으로 살았단다

술이 웬수지 이제 다시는 술을 먹지 말아야지 아 그런데 그놈의 술이 가끔 생각난단 말야

말하는 그나 듣는 나나 어이없어 웃긴 마찬가지였다

그때 애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 왔단다

 

관광객이 몰리는 곳에 살았던 그는 80년대 호경기로 한몫을 잡았으나

불행하게도 스스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였다

그닥 예쁘지않은 그의 마누라가 바람을 피우다 그에게 들키고 말았던 것이다

불같은 성정이 폭발하여 달아나는 마누라를 향해 공기총을 발사하였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뒤퉁수에 정통으로 맞아 그자리에서 숨지고

술취한 그도 그 총으로 죽었다

 

술은 사랑의 묘약이전에 매우 위험한 음료이기도 하다

 

* 과부틀

   7~80년대초 이 땅에도 오토바이 붐이 일기 시작하였다

   성능좋은 소형 90cc 오토바이는 유별나게 사망사고가 많아 당시 과부틀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수주의 술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