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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jaye syo 2009. 10. 23. 23:13

- 아저씨 쉬었다 가세요.

 

무심코 골목길을 택해 성곽이있는 언덕길을 올라가 보았다.

이대동대문병원은 비교적 나중에 건축한 듯한 건물 한동만을 남기고 철거중이다.

내님은 강남에 머물면서 강북에 있는 내 속내 애태우더니 오리무중이고,

서울시장은 기특하게도 이 성벽을 온전히 복원하겠다고 들떠있다.

커다란 돌을 켜켜이 쌓은 서울의 내성은 동대문교회에서부터 종로, 청계천.... 신라호텔 아래 장충체육관까지

흥인지문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징헌 일본놈들이 성벽의 육중한 돌들을 다 실어다가 제물포항 건설에 사용하였다나?

성밖을 물끄러미 보다가 중장비가 땅고르기에 여념이없는 병원옆길로 나와 동대문을 향한다.

전철 1호선 지하도로 내려가려다가 새로 생긴 횡단보도를 발견하고 종로통을 건너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인 골목으로 들어선다.

다 낡아빠진 한옥들이 비닐커버를 뒤집어쓰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꼬라지는 흉물을 넘어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외형에서 풍기는 기품은 개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장안의 부자들이 떵떵거리고 살았음직한 위엄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두껍고 넓쩍한 판자로 만든 무게있는 대문이며 허물어진 벽을 부실한 시멘트 블록으로 수리한 흔적들이

그나마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또 다시 속살을 내비치며 심한 외상을 앓고있다.

 

무심은 이어져서 미로와같은 골목길을 빠져나올 즈음

꺼벙한 아주머니가 옷자락을 붙들며 은근한 부추김으로 쉬었다 가라는 속삭임에 산산이 부서진다.

아 백주대낮에 아직도 이런일이 남아있다니.

순간 폼나게 군복을 다려입고 동대문을 지나던 그 까마득한 기억이 스치운다.

큰길이었음에도 날렵한 여자는 내 모자를 휙 잡아채서 골목으로 날잡아봐라 내튀었다.

그 당혹함이란 필설로 어찌 다하리오만 그 여자에게 통사정을 하여 모자를 돌려받고 돌아서는데

고자예요?

얼토당토한 그여자의 비아냥이 내내 뒤따라 다녔다.

좋은 여자있다며 쉬어가라는 말에 정중하게 거절하면서도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다니 뭔가 미진하였나보다.

 

엉? 아직도 있어?

종로통의 토박이 철물점주인은 놀라는 시늉으로 되묻는다.

그러면서 예로부터 동대문 밖 사창가는 유명하였단다.

오간수문이 있었을 때 청계전에 기둥을 박아 판자집을 짓고,

거기서 똥을 누면 똥덩어리가 그대로 청계천물에 떨어지던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다며

거기 갔다온 놈들은 다 매독이 걸렸다고 증언한다.

그리고는 불쌍한 사람들 잡아다가 피빨아먹는 놈들 싹 없애야 돼 라며 열까지 올린다.

 

동대문까지 오가는 일은 모처럼의 한가함이다.

쉬었다 가세요.

삼십년만에 들어보는 말 같다.

 

아 무정한 님

자동차가 지독하게 막히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