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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

jaye syo 2009. 5. 31. 10:56

왕건의 일화가 남아있는 곳 또 신검의 일화도 남아있는 곳

대전에서 4번국도로 논산을 향하다보면 연산 바로 못미쳐 개태사역 근처 좌측 도로변에 있는 절답지않은 절이다

청주 용화사에서 본 석불입상과 흡사한 돌부처에 경외감이든다

고려초기 940년경에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언제 폐찰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일제시기 김 대성화보살이 쓰러진 석불을 세우고

부서진 석불은 다시 조성하여 오늘의 개태사에 이르렀다고 비문에 쓰여있다

 

수월관음도에서 본 화려함이 문양에서 나타난다

고려인의 섬세한 솜씨가 일품이다

  

연산중학교에 다닌다는 저 학생에게 개태사주차장에서 개태사가 어디냐고 물었다

"여긴데요"하며 개태사로 무심하게 들어가고 있다

분위기가 어쩐지 절 같지않아서 너무 도로변에 위치해서 확인이 필요했나보다

고려때까지만해도 불교는 민중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 확트인 곳에 불사를 이뤘다는데서 알수있다

 

흔히 목판을 보존하는 장경각을 저렇게 짓는데.....

 

최완수선생의 형식에 따른 연대추정은 초기고려시기가 맞다

그러나 통일신라의 작품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렸을때 이것은 연산에 있었다

무수한 전설과 함께

그때 어른들의 말씀이

저 솥이 깨진 것은

일제말기 공출이 극에 달했을적에

무쇠솥이 엄청 무거우니까

깨뜨려 가져가려고 저리 했단다

결국 못 깨고

통째로 운반하여 배에 실었는데

솥이 어찌나 크게 울어대는지

일본사람들이 겁을 먹고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았다는 것이었다

개태사에서 보게 되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여기에 일천명분의 된장국을 끓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국을 맛있게 끓여 먹었는데 사람이 빠져 죽어있더라나?

하여간 전설은 쓸데없이 많이 만들어 진다

 

예쁜 절집이다

 

삼존불중에 중앙에 위치한 불상이다

 

우리의 시선으로 좌측의 협시불이고

부처님의 입장에선 우측에 있는 불상이다

나는 항상 헷갈린다

 

돌에 조각된 문양이 독특하고 섬세하다

 

이 불상이 원래의 모습같고

 

이 불상과

 

이 불상은 새로 복원한 것인가보다

각을 한 솜씨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종무소에 스님 두분은 저 자리에서 한참은 이야기 삼매에 빠져있고

인적이 드문 개태사 방문객으로 옷차림이 비슷한 두 여성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타났다

 

 

탑에 인사하고 홀연 사라졌다

 

화장실 한번 근사하다 

 

저 돌무더기를 보면 개태사의 옛규모가 어떠했는가 짐작이 된다

 

밖에서 보면 사당같은 느낌이다

 

용화사의 부처님도 노천에 방치되었다가 저렇게 육중한 전각을 지어 비가림을 하였다는데

사람의 믿음은 불가사의하게도 어떠한 일이든 해내고 만다 

 

노무현전대통령의 장례식이 있던날 오전 광화문을 두번이나 지나고

오후에 대전을 거쳐 연산 옛고향집에 가던중에

개태사에서 빌고 또 빌었다

부디 극락왕생하시라고

또 인간의 저 옹졸한 마음을 다 버리게 해달라고

나의 옹졸함도 용서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