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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고양이 시골닭

jaye syo 2009. 3. 8. 01:41

내 일찌기 인간들이 우러르던 봉황의 자손으로

용문산자락 백운봉아래서 도를 닦을 적에

동으로는 중원산을 넘나들고

북으로는 봉미산 서로는 유명산 중미산을 발아래 굽어보며 소일삼아 유람하고

좌우 야트막한 성두봉 삿갓봉이야 안마당이나 다름없었느니라

 

마당에 터잡은 점박이 고양이는 난생처음 닭이라는 날짐승을 보고는

저것이 무엇이냐 비둘기도 아니요 까치도 아니요 요란스런 때까치도 아니요

참새는 더욱 아닌것이 군침돌게는 생겨먹었는데 요것이 참말 뭐란 말이냐

살금살금 사냥본능의 자세로 접근해 보는데 시골에서 산전수전 다 격은 작지만 뼈대굵은 토종암닭

꼬꼬댁소리 벼락같이 내지르며 후다닥 난리치는 바람에 깜짝놀라 슬그며니 우회하여 피해 달아납니다

 

양평에서 농장을 하시는 우리모임의 대장님은

"오늘 어디 안갈거요?" 전화로 묻습니다

"토종닭 몇마리 가져다 줄테니까 맛이나 보시라고" 하십니다

"많이는 못 가져가고 세마리만 가져갈께 왜냐하면 이거 한마리 잡기가 여간 힘드는게 아니거든"

 

종이박스에 구멍을 뚫고 두마리 한마리 나누어 담아오셔서 주의사항을 하달하십니다

"일단 놓치면 못잡으니까 조심하셔"

"왜 못잡아요?"

"날아다니는데 어떻게 잡아"

 

두마리를 잡아 짭쌀 대추 인삼 마늘을 넣어 백숙으로 무려 다섯시간을 고았지만

살이 풀어지기는 커녕 섬유질로 변해 갈라지며 질기기가 칡뿌리 같고 뼈다구 역시 돌뎅이 같이 딱딱합니다

맛은 그만인데 질리고 말았지요

저 한마리를 어찌하랴

누굴 줘버리자 그냥 풀어놓으면 어떨까? 그러면 고양이가 잡아먹지 않을까?

운명이야 사람에게 먹히나 고양이에게 먹히나 지 운명이지 뭐

고양이에게 쉽게 잡히지는 않을거야 보통 억씬놈이 아니거든

설왕설래하다가 박스의 뚜껑을 살짝 들춰보는데 번개같이 튀어올라 탈출에 성공합니다

정말로 날라다녀서 담장 정도는 식은죽 먹기요 지붕위로 가뿐하게 올라가 닭쫓던 강아지 마냥 망연자실 쳐다만 봅니다

그래 팔자다 고양이와 한판 겨뤄 살고 죽는 것을 저놈의 팔자에 맡겨 보리라

낮이야 괜찮다지만 밤에 취약할텐데 ....

 

하루가 지나고 마당을 살피는데 저 한쪽 구석에 동그란게 있어 보았더니 알을 한개 낳았어요

이놈이 실로 보통닭은 아니로구나

대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한순간 방심으로 흉악한 주인놈에게 잡혀 먼 타향 도심까지 왔다마는

찰거머리같은 인간의 손아귀에서까지 탈출에 성공한 내가 겨우 네깟 고양이에게 당할 것 같으냐?"

초장에 고양이의 기를 팍 죽여놓고서는 일장 연설을 하였나 봅니다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시골에서 영악한 고양이들의 숫한 공격을 막아내며 험한 생을 살았던 파란만장한 운명을 타고난 닭과

닭이라는 동물을 처음보고 격는 고양이의 입장이 이를 말해주고 있군요

고양이앞에서 으시대는 닭의 꼴을 처음봅니다

 

마당에 어슬렁거리는 거만하기 짝이없는 봉황의 직계 

뼈대있는 토종닭을 서울한복판에서 보게 되었어요

 

요 얄미운 놈을 일명 때까치라고도 하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