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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교

jaye syo 2009. 3. 5. 00:09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90이 넘었어요

아니 얼마나 더 사시려고 병원엘 다니세요?

더 살려고 다니나요 아프니까 다니는 거지요

 

할머니는 강남에 사신다

강북에 있는 병원엘 다니려고 택시를 타셨는데

걸음도 불편하신 몸으로 혼자서 택시를 잡으시는 모습에 기사분이 나이를 뭇더란다

진료를 마치신 할머니를 모시고 강남을 간다

 

장충동에서 남산터널을 통과해 용산 미군기지를 지나 잠수교에 이르러 한강을 굽어본다

인간의 영욕이 강물에 다 녹아있는 듯 석양을 반사하는 물빛이 해보다도 더 반짝인다

말이 잠수교지 일년중 며칠이나 물속에 잠길까?

봄맞이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한창이고 뭔 치장을 공중에 근사하게 매달아 윗상판의 딱딱한 모양을 감추었다

지하벙커를 좋아하는 명바기의 비위라도 맞추려는 걸까?

 

붉은 해가 다리위에 덩그러니 걸렸다

공자는 다리위에서 흐르는 물을 물끄러미 보시고는

"가는 것이 이와같구나 밤낮을그치지않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 탄식을 하셨다는데

장자는 혜시와 호량지상을 거닐면서 유유히 헤엄치며 노니는 물고기의 즐거움을 논하였다는데

쫓기듯 이리왔다 저리갔다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내달려야만하는 신세라니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헛바람이 새나온다

관념의 유희는 희노애락이 변화부쌍하게 전개되는 비현실의 세계이지만

나의 관념에 자리한 내님은 예쁘기만하고

내님의 관념에 자리한 나는 천하에 잡놈 돈 주앙 카사노바 변강쇠가 되기도 하는가보다

황사인지 매연인지 습기인지 분간 안되는 공기층이 만들어놓은 석양의 발그레한 빛은

잠수교를 휙 지나는 한 순간 얼핏 망막에 각인되어 내님의 동그란 얼굴빛이 되기도 한다

 

돌아오는 일요일엔 미술관에나 가야겠다

촘촘하게 그려진 별을 보랴고

 

강남에 내려만 드리고 돌아서는 내게 할머니는 못내 서운하신 표정이시다

차라도 한모금 마시고 가라 당부하시는데....

잠수교는 물에 잠기지도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