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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가

jaye syo 2009. 1. 14. 23:59

쇳대박물관옆으로 좁은 골목을 들어서면 얕으막한 한옥에 예가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있어요.

토속음식을 전문으로 그야말로 요즘의 건강식이 다양하게 망라됩니다.

날마다 메뉴가 조금씩 변하는 데다가 제철음식을 골고루 선보인다는데 눈길을 끌어요.

오랜만에 예가에서 저녁을 먹었어요.

45도 안동소주를 한병 옆에 끼고 귀떼기가 시린 찬바람을 맞으며 들어섰더니,

몸피좋은 주인이 반기며 왜그리 뜸했냐고 눈을 흘깁니다.

그러면서 변화된 실내를 설명하는데 새롭게 온실을 하나 만들었다며 일단 온실에 들어가 몸을 녹이라고 합니다.

작은 황토벽돌을 예쁘게 쌓아올리고 허리아래쯤에서는 나무로 벽과 바닥을 깔았어요.

아늑하고 훈훈합니다.

 

우선 죽이 약간 나와요

잡채, 도토리묵, 버섯구이, 가지볶음, 커다란 도미찜, 덜삭은 홍어찜, 생굴, 과메기쌈, 식물성불고기, 등등.....

배추김치, 총각김치, 멸치볶음, 깻잎장아치, 씀바귀김치, 된장찌게, 심심한 버섯된장국, 가자미식혜, 청매실장아치, 등등.....

빈속에 안동소주 한잔을 꿀꺽 들이켜요.

식도에서부터 사르르찌릿한게 음식맛을 돋우지요.

그렇게 경계하여도 말짱 헛일입니다.

배가 터지도록 퍼먹어댑니다.

후식으로 배 사과 귤한쪽씩 나오고 모처럼 왔다고 곳감에 감자떡을 내와요.

너무 과하게 쳐먹어 씩씩대며 예가를 나서는데 찬바람이 훈훈해요.

아 술이란게 좋은점도 있구나.

 

전철을 타고 책을 펼칩니다.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曰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우직한 자로가 스승 공자에게 귀신을 섬기는 일에 관해 물어요.

공자님의 대답이 천하에 걸작입니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긴단 말이냐?"

여기서 그치면 자로가 아니지요.

"감히 죽음에 관해 묻겠나이다."

우리의 공자님 왈,

"아직 삶도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알딸하게 취해서 책장을 넘기다가 이 장에 이르러서 저 팔레스타인 사태가 떠오릅니다.

같은 조상, 같은 핏줄끼리 어쩌다가 그리 오래도록 피터지게 싸우는지 안타깝기 그지없군요.

저들은 사람은 섬길줄 모르고 귀신만을 섬기는 민족이구나.

삶을 하찮게 여기면서 알수없는 죽음을 귀하게 여기는 민족이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사람을 죽이지못해 안달할 수 있을까?

 

드디어 집에 도착하여 도시의 퀴퀴한 먼지를 닦아내려고 욕실에 들어섭니다.

맹꽹이 배가 따로 없군요.

머저리처럼 퍼먹어대더니 꼴 좋게 되었지요.

이래서 맛있는 집에 가는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 맹꽁이 - 우직하게 미련함을 빗댐

* 맹꽹이 - 자기 꾀에 넘어가는 미련함을 빗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