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포스코센터에서 결혼식이있어 우리 가족은 모처럼 한데모여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넜습니다
편하게 입고 다니는 버릇 때문에 양복을 입는다는 것이 늘상 부담이지요
딸은 같은 색상으로 아래위를 맞춰입으라고 성화입니다
대신에 넥타이는 생략하자고 의견을 건네 보아요
선릉역에서 내려 포스코센터쪽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며 상체를 꼿꼿하게 세워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에프게니 오네긴의 선율이 건물을 감싸고 흐릅니다
평복차림의 금난새선생이 유러시안 필하모닉 단원들의 리허설에 몰입하여 조율을 고르고 있어요
오후 5시에 연주를 할 예정이랍니다
결혼식을 보기전에 식사를 먼저 하래요
사람이 붐벼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군요
19층에 양식 중식 일식이 준비되어있는데 가장 줄이 짧은 일식으로 결정하고 기다렸다가 느긋하게 먹고 나와
결혼식장에 내려가니 식은 이미 끝나가고 있고
좀 기다렸다가 주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로비에 오르니 아랑훼즈 협주곡의 현란한 기타음이 눈을 타고 들어옵니다
아직도 사전연습이 한창이군요
무대 바로 옆 계단으로 올라가 체면이고 뭐고 덜퍼덕 주저앉아 리허설을 진지하게 주시합니다
딱 끊어지는 음, 길게 늘어지는 음, 센 음, 여린 음, 직선을 그리는 음, 곡선을 그리는 음, 모난 음, 둥근 음, 등등을 세세하게 짚어 줍니다
이병우의 기타에 "아!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구나 기다렸다가 본공연을 감상해야지" 다시 지하층으로 내려가
커피를 한잔하며 한시간 반을 가족들과 노닥거립니다
표를 인터넷을 통해 미리 배포하였다는데 혹시 빈자리가 난다면 다행이겠다 싶어 기대를 하면서요
예식이 끝나면 가려했던 한가람미술관 렘브란트특별전은 물건너 갑니다
운이 좋은 편입니다
안내하시는 젊은 분이 들어가셔서 빈자리에 앉으세요 하네요
아뿔사 자리 선택이 최악의 조건인 곳이란 걸 폴로네이즈 빵파레가 울리자 알게 되었지요
바로 옆에 작을 스피커을 매달아 놓았는데
앰프를 통한 스피커의 음이 미세한 시간차로 인해 하우링처럼 울려요
귀를 있는대로 다 열고 집중할 수 밖에요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 중 폴로네이즈가 첫곡으로 연주되고
소프라노 서경숙이 오 거룩한밤과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투나잇을 아주 근사하게 불러요
곧 바로 이병주가 연주하는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이 이어지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이 장엄하고 여리고 엄숙하게 연주되었습니다
신이 내린 음성은 조수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로군요
서경숙의 힘차고 안정되고 섬세한 목소리는 실로 오랜만에 내 정신세계에 오르가즘을 선사합니다
스피커에서 은근히 방해하는 불협의 시간차 울림이 아니였다면 나는 필경 구름에 둥둥 떠있었을 거예요
오!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랑훼즈 협주곡은 워낙 유명하고 귀에 익은 음이래서 웬만한 연주는 성에 차지않지요
자랑스럽습니다
저 이병주의 연주가 그리고 금난새의 유라시안 필하모닉의 탁월한 연주가 자랑스러워요
드디어 맑은 하늘을 기타의 선율을 타고 장자의 붕새처럼 날아올라요
하늘의 축복이 과연 따로 있을까?
차이코프스키의 곡에는 짙은 우수와 고적함이 요소요소에 흔적을 남겨요
인간은 철저하게 혼자일뿐이라고 강변하는 듯 그의 가락에서 깊게 몸부림쳐요
견디기 힘든 고독이 줄기차게 몰려오고 떨쳐버리려는 안간힘이 객기를 부려보기도 하고
화해와 융합의 하모니가 일시적 해탈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그의 고뇌는 깊어지기만 하는 것 같아요
무겁습니다
금난새는 위대합니다
대가의 티를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대중과 호흡을 같이하려는 노력이 그를 더 크게 만들어요
젊은 단원들의 기량에 새삼 놀랐지요
천상의 음의 향연에 흠뻑 빠진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