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르쌍띠망

jaye syo 2008. 8. 2. 14:41

사마르칸드에 위대하신 임금이 계셔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린지 오래되었지요

불현듯 이웃나라를 다스리는 동생이 보고싶어 무작정 초청편지를 보냅니다 

형님의 편지를 받은 동생은 일각이라도 지체할 수 없어 긴 여행길을 서두르지요

일단 성밖에 천막을 치고 하룻저녁을 잔 다음에 이튿날 새벽 길을 나서는 전통의례를 행합니다

한밤중에 문득 형님에게 드릴 중요한 선물 하나가 빠졌다는 걸 알고

번거롭게 수선을 떨게 아니라 홀로 살짝 성중에 들어가 선물을 챙기려 하였지요

가볍게 성벽을 넘어 자신의 침실로 들어섭니다

아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요

왕비 즉 사랑하는 아내가 시커먼 깜둥이하고 자신의 침대에서 곤히 자고있는 것입니다

이 불인한 년놈들 하며 칼을 빼들고 단칼에 년놈을 죽여버리고는

실의에 빠져 힘없이 천막으로 되돌아옵니다

세상의 온갖 영화가 부질없음을 그제야 깨닫고는

왕비의 어처구니없는 난잡한 행동이 또 견딜 수 없는 무게로 자신을 짖눌러 끝 모를 번민에 사로잡히고 말지요

먹지도 못하고 잠도 설치고 고된 사막여행은 몸을 명태처럼 바싹 마르게 하였습니다

드디어 형님의 나라에 도착한 동생은 다 죽어가는 환자와도 같았지요

형님임금이 깜짝 놀라 대체 무슨 일이있어 네가 그렇게 되었더란 말이냐? 캐물었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지요

하루는 동생을 위로할겸 야외로 사냥을 나가자고 제안을 합니다

동생은 힘없이 형님이나 갔다오라며 그동안 궁궐을 좀 돌아보고 여유있게 쉬고 있겠다고 간곡히 고사하지요

그래라 내가 사냥에서 돌아올 때까지 푹쉬고 있거라 그리고는 형님왕은 사냥을 떠나요

동생은 모처럼 한가하여 그 넓은 궁궐을 쉬엄쉬엄 다니며 살피는데

말할 수없이 아름다운 정원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역시 형님의 궁궐은 상상할 수도 없이 아름답구나 감탄을 하며 음미하는데

한쪽 문이 스르르 열리며 왕비인 형수님이 까운을 걸친 이십여명의 시녀들과 정원에 들어서서

사이드야 어디있느냐 내가 왔노라 하니까 시커먼 껌둥이가 갑자기 나무위에서 여기있오하며 뛰어내려요

그러더니 가운을 입은 시녀들이 가운을 벋어던지고 알몸으로 변하여

왕비와 함께 깜둥이들과 진탕 음란지사를 벌리는 겁니다

동생은 갑자기 하늘이 환해지면서 아 나의 불행은 형님에 비하면 실로 하찮은 것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밥맛도 좋아지고 잠도 잘자고 마음이 평정해져서 그간의 바싹 말랐던 몸이 말짱하게 회복되었습니다

한달여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형님은 건강해진 동생을 보고 또 놀랍니다

아 이녀석이 말못할 사연이 있겠구나 하지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으니 자초지종을 소상히 들으리라

그리고는 동생을 조용히 불러 그 연유를 물어요

동생은 말할 수도 하지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봉착하지요

형은 다그칩니다

입을 꾹 다물고 심각하게 서있는 동생에게 이것은 왕으로서의 명령이다 호통을 쳐요

형님 용서하십시요 도저히 믿기지않는 일을 목격하였습니다 하지만 명령이라니 아뢰지요

처음 제가 병자처럼 말랐던 것은 떠나올때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여 세상의 어떤 불행이 이보다 클까 좌절감이 들어서이고

몸이 회복되어 건강하게 된 것은 내불행보다 더 큰 불행을 격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부터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형님 이것만은 제발 묻지마십시요

아니다 꼭 알아야만 되겠다 어서 말하여라

아 물으니 아뢰리다 형님께서 사냥을 나가시고 저는 소일거리로 궁궐을 돌아보는데

정원에서 여차여차하여 죄송하옵지만 형님의 불행에 비해 저의 불행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것이 참말이더냐? 만일 거짓이라면 형제지간이라도 용서치 않으리라

사냥을 간다고 선포한 다음 성밖에 천막을 치고 형님과 저는 몰래 성중에 남아 살펴보시면 제말이 사실임을 아실겁니다

며칠 있다가 사냥을 또 나간다고 성밖에 천막을 치고 이튿날 성대하게 길을 떠납니다

몰래 성중에 남은 형님왕은 동생이 보았다는 곳으로 안내되어 자신의 아내인 왕비의 난잡한 행위를 보게 됩니다 

형도 동생처럼 충격에 휩싸여 정원에 있던 년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성을 빠져나와 정처없이 길을 떠납니다

 

아라비안 나이트. 김병철역. 범우사. 1992년

샤리야르왕과 그의 동생 이야기 중에서 요약.

 

그 뒤로 마왕을 만나고 마왕의 애첩과 강제로 동침하고 세상의 모든 여자는 같다며 왕궁으로 돌아와서

매일밤 처녀를 징발하여 잠을 자고 아침에 죽이고를 반복하게 되자 나라안에 처녀가 씨가 마르고

처녀를 증발하던 대신의 딸 샤라자드가 자청하여 수청을 들다가

왕이 허락하신다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고 시작하는 천일야화의 이야기입니다

 

우연히 니체의 르쌍띠망에 대한 인용된 글을 읽고 오래전에 본 아라비안 나이트가 생각이 나서

순전히 가물한 기억에 의존해 회상하려니 무리가 따릅니다

 

니체의 말을 옮겨봅니다

 

고귀한 인간은 자기자신에 대해 신화와 개방성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반해,

르쌍띠망의 인간은 정직하지도 순박하지도 않으며, 자기자신에 대해서 솔직하지도 진지하지도 않다.

그 영혼은 곁눈질만 일삼는다.

그의 정신은 숨을 곳 은밀한 골목길 뒷문을 사랑한다.

은폐된 모든 것을 자신의 세계로 자신의 안정으로 자신의 생기로 유혹하는 것이다.

그는 침묵할줄 알며 잊어버리지않고 원한을 마음에 담아두며 잠정적으로 자신을 외소하게 만들고 굴종할줄 안다.

르쌍띠망의 종족은 어떠한 고귀한 종족보다도 훨씬 영리하게 된다.    - 니체 -

 

저녁부터 비가 많이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