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선생님의 운전솜씨는 안정감이 있어요
복잡한 시내에서도 마냥 느긋합니다
요석궁을 지나 샛길로 들어서더니 문화재의 위치를 알리는 밤색 팻말의 방향을 쫓아 주차를 해요
과수원이 딸린 전형적인 시골집에 곱게 늙으신 할머니 두분이 평상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군요
정원이 눈길을 끌만큼 아름다워 기웃하는데 할머니 한분이 얼른 저고리를 주워 입습니다
두분의 한적한 리듬을 깬 것 같아 발길을 소위 할매바위라 불리우는 감실부처쪽으로 돌립니다
흔하디 흔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간간히 물통의 물을 비우면서 더운 여름산을 올라요
이게 웬일이랍니까?
이 어설픈 광경에 김이 새고 말았지요
저 복식은 일반 평민의 복식과는 거리가 있고
또 경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살아 생전에 생불이라 칭송을 받아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복식의 모양새가 전형적인 신라 귀족의 복식이 틀림없어요
구도의 길을 설파하는 걸까요?
어렵습니다
중생을 위한 구도의 길이 지난하군요
연민이 깊어 눈물을 지어요
감실에 계신 여성성의 부처님앞에 비구니스님의 표정이 진지하다못해 비감이 서립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당시 남산골에 사시던 후덕한 귀부인의 상입니다
천상에서 인간세를 굽어보는 보살의 모습도 아니고 부처님을 좌우에서 보필하는 보살은 더더욱 아니예요
곱게 늙으신 인자한 할머니상이라 하기에는 너무 예쁘고 젊어 그리 부르기가 민망합니다
인정 많은 신라여인입니다
장인의 경배의 염이 서린 걸작이지요
천년이 넘도록 나약한 인간의 몸과 마음의 병마를 씻어주고 있어요
어떠한 명의가 이에 화답할 것인가?
우리의 심성에 자리한 주님이 이러한 모습은 아닐까?
지장보살의 현현이라고도 하는가 봐요
만물을 자라나게 관장하시는 이가 지장보살이라는군요
성불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중생구제에 심신을 다 기울여 힘쓴 보람이 성불로 이어진 것이지요
후세의 인간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성불과는 거리가 멀군요
참 갖다 붙이기도 잘해요
저 바위가 코끼리를 닮았다나요?
그러고 보니 그럴듯도 합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 제단이 없었는데 어느새 촛불이 등장하였다고 .....
기록이 없어 신화가 난무합니다
뒷집 총각이 사모하던 앞집 처녀가 대갓집에 시집을 가서
평생을 사모의 정을 품고 살다가 저 모습을 새겼다는......
알 수 없지요
복을 빌고 가족의 안녕을 끈임없이 빌 뿐입니다
내려오다가 할머니 두분이 계신 시골집 마당에 들어섭니다
- 어데서 오시었소?
- 서울서 왔습니다
- 그래 잘 봤능교?
- 예 여느 부처님과는 달리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이라 친근하고 예뻤습니다
- 처음에는 길도 없었지요 겨우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로 나무가지를 쳐서 길을 냈는데
숲에 가려진 바위에 부처님이 숨어있어 감실 부분만 나무를 베고 풀을 걷고 정리를 했더니만
어느날 그 주변 나무를 다 잘라내고 전체가 드러나게 해 놓았더군요
그 뒤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지금처럼 환해졌어요
감실의 귀부인처럼 이 할머니도 곱게 인자하신 풍모로 늙으셨습니다
이곳의 부처님이 석굴암의 부처님보다 200년이나 앞서 조성이 되었다고 할머니는 설명하십니다
누군가 할머니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여 그렇게 믿고 있군요
석굴암보다는 늦은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보여져요
자신들의 복식을 과감하게 부처의 몸에 입힐 수 있는 충분한 토착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가능한 양식을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정답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록의 부실이 원인이지요
아쉽습니다
ㄱ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