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에 민감한 팔자라고 소위 철학관의 도사들이 말하는 역마살을 어찌하랴
통일전망대를 지나 임진강변으로 쭉 뻗은 길로 내쳐 달렸어요
율곡이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화석정이 임진강 굽이를 내려다 봅니다
수년전 호주로 이민을 떠난 옛사랑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정처없이 하루동안 무작정 길을 헤메고 싶다고 다 사그러진 화로에 부채질을 합니다
이 사람의 삶이 말할 수 없이 고달프구나
고고한 자존심을 저렇듯 쉽게 풀어놓다니
궂이 가보고싶은 곳이라도 있나요?
어머니와 화석정엘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 화석정엘 가시려구요?
어정쩡 정자에 오르더니 북녁의 하늘을 보며 허리를 쭉 펴고
물끄러미 강물의 흐름을 한참동안 바라보아요
계면쩍지요
가까이 가지도 못했습니다
한동안 있다가 이제 됐다며 가자고 합니다
그때는 도로가 안좋았는데 지금은 4차선 매끈한 포장으로 철책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뚫렸군요
기왕에 나섰으니 기분도 풀겸 적성 연천쪽으로 한바퀴 돌아갑시다
그러세요
환한 미소가 아닌 어딘가 어색한 미소로 간결하게 답하네요
고랑포 땅굴이 있는 백학면을 지나 임진강의 맑은 면모를 유감없이 볼수있는 북삼리 조각공원에 도착했지요
일설에는 전두환의 아들이 무려 50만평의 땅을 사들여 농장을 만들었다나요?
그는 뭔가 하고싶은 말들이 입가에 맴도는 것 같은데 끝내 아무말도 하지않아요
묻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말도 그에게 위로가 되지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장파리 팻말이 보이는군요
그 명성이 자자한 장파리 만신은 아직 잘 살아있으려나?
객현리에 이르러 길이 좁아집니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 함께 어우러져 흐른다는 아우라지를 지나고
지석묘로 유명한 양원리를 지나 한탄강 다리를 건너 구석기 유적이있는 전곡리에 진입합니다
내집이 있는 곳이지요
예고없이 찾아든 옛집에서는 벗들이 우루루 일어나 반깁니다
냄새가 서울까지 풍겼나보지요?
탁자에는 산나물이 수북하고 더덕이 있고 두릅이 있고 소주잔이 한순배 돌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