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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꽃 넘세

jaye syo 2007. 10. 13. 00:39

- 한 인간의 일생이 근현대사의 아픔을 적나라 하게 들춰낸다 -

 

김금화 그의 어릴적 이름이 넘세라며 자서전의 서두를 그려 나가고

13세 어린나이에 정신대차출을 피해 시집을 가서 모진고생의 일화를

그 시대를 산사람이라면 누구나 눈물을 흘리게끔 세세히 서술 하였다

- 큰씹에서 작은씹 나왔시다 -

아들을 학수고대하던 집에 둘째부인으로 시집와서 딸을 낳고 또 딸을 낳자 시어머니 입에서 나왔다는

그 아이가 나라무당 김금화가 되었다

무당은 지체 높은 양반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의 축에 끼지도 못하는 저 인도의 불가촉천민과 다름없는 천출이다

하지만 하층민의 애환을 달래주고 그들의 고통을 껴안고 보듬은 보살계의 고마운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사나운 핍박에도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몇년전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회장님이 강화도 김금화무당전수관에서 들려준 우여곡절한 일화를 떠올린다

- 80 몇년인가 조자룡선생이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대규모공연단을 미국에 보내는데

  한국적인 독특한 그 무엇을 가지고 가야하는데 고민이라고 뭐 좋은 것이 없을까? 그래요.

  그래서 외국에 보일 우리문화라면 굿만한게 없을 거라며 김금화무당을 데려가라고 했지요

  좋은 생각이라며 반색을 하고 가더니 며칠있다가 하는 말이 윗선에서 촌스런 굿을 외국에 보인다면 망신만 당할게 뻔한데

  굿이라니 당치도 않다며 펄펄 뛰더래요 그러면서 자기를 미친놈 보듯 하더라나요?

  조자룡선생이 참 애썼지요 끝까지 설득하고 우기고 해서 김금화를 데리고 간 거예요

  결과적으로 대힛트였지요 미국공연으로 김금화는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어요 -

김종규회장님의 얘기를 듣다 보면 이분은 정말 대단한 기억력을 지니고 계시다는 느낌이다

 

우리엄마는 14세에 시집을 갔다고, 그 어린나이에 피눈물나는 고생을 하였다고....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고향분을 만나면

어려웠던 옛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을 간간히 보며 엄마세대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김금화무당의 처절한 일생의 모습에 측은함과 애잔함이 절로 인다

 

이번주말엔 강화도에나 가야할 것 같다

전수관에서 만수대탁굿을 한다니 말이다

 

비단꽃 넘세. 지은이 김금화. 펴낸곳 생각의 나무.

 

마당의 감. 탐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