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은석암
약수를 뜨러 간다.
이번엔 기필코 은석암까지 가보련다.
작년 가을에 비색의 단풍을 감상하며
빈물병이 든 배낭을 지고 능선길을 택해 나섰다.
거대한 기암이 밀집한 계곡의 끝자락
야트막한 돌담사이 출입구를 내고 멋대로 만든
돌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마당이 나온다.
병풍 같은 암벽을 이루는
집체만 한 포개진 바위 위에
작은 돌부처가 빼곡하게 앉아있어
묘한 분위기의 야외불전인양
뭇 중생의 흐릿한 눈을 홀린다.
순한글 간판이라서 은석암의 의미를 알 수 없으나
짐작컨대 隱釋庵이 아닐까?
녹야선원을 지나 물레방아 약수터에서
무려 600m의 오르막길을 더 가야 은석암이 보인다.
약수터를 지나가던 누군가의
"은석암 물이 더 좋던데..."라는 말 때문에 간 것인데
저 쪽 마당 끝에 몸집이 아주 큰 하얀 진돗개가 묶여있다.
경계의 눈빛이 날카롭다.
隱釋庵
부처님이 은밀하게 숨어있는 신비로운 곳.
몰래 매일매일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에 올라
새벽의 여명을 온몸으로 받으며
사바세계를 굽어보시고 뭇 중생을 살피시는
매우 비밀스러운 관세음보살의 거처라는 뜻이 아닐까?
작금의 은석암은 더 이상 비밀스러운 곳이 아니다.
인간들의 작위는 부처님의 거처마저 뒤흔든다.
홀로 숨어 수행에 정진하는 부처님의 자리가 아니라
만천하에 들어내놓고 과시하는 부처님의 처소로 만들어
주변이 어수선할 뿐 아니라
마음으로 보이는 법신의 부처님이 아닌
눈에 직접 현신하는 색신의 부처님을 수없이 늘어놓고
발복을 빌어본들 시끄럽기만 하다.
은석암 약수는 겨울로 접어들자
시원한 물줄기가 쪼그라들더니
힘없는 노인의 오줌줄기처럼
가느다랗고 찔끔 쫄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