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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은석암

jaye syo 2025. 4. 6. 02:34

도봉산 은석암

 

약수를 뜨러 간다.

이번엔 기필코 은석암까지 가보련다. 

작년 가을에 비색의 단풍을 감상하며

빈물병이 든 배낭을 지고 능선길을 택해 나섰다.

거대한 기암이 밀집한 계곡의 끝자락 

야트막한 돌담사이 출입구를 내고 멋대로 만든

돌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마당이 나온다.

병풍 같은 암벽을 이루는

집체만 한 포개진 바위 위에

작은 돌부처가 빼곡하게 앉아있어

묘한 분위기의 야외불전인양

뭇 중생의 흐릿한 눈을 홀린다.

 

순한글 간판이라서 은석암의 의미를 알 수 없으나

짐작컨대 隱釋庵이 아닐까?

 

녹야선원을 지나 물레방아 약수터에서

무려 600m의 오르막길을 더 가야 은석암이 보인다. 

약수터를 지나가던 누군가의

"은석암 물이 더 좋던데..."라는 말 때문에 간 것인데

저 쪽 마당 끝에 몸집이 아주 큰 하얀 진돗개가 묶여있다. 

경계의 눈빛이 날카롭다.

 

隱釋庵

부처님이 은밀하게 숨어있는 신비로운 곳. 

몰래 매일매일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에 올라 

새벽의 여명을 온몸으로 받으며

사바세계를 굽어보시고 뭇 중생을 살피시는 

매우 비밀스러운 관세음보살의 거처라는 뜻이 아닐까? 

 

작금의 은석암은 더 이상 비밀스러운 곳이 아니다. 

인간들의 작위는 부처님의 거처마저 뒤흔든다.

홀로 숨어 수행에 정진하는 부처님의 자리가  아니라 

만천하에 들어내놓고 과시하는 부처님의 처소로 만들어

주변이 어수선할 뿐 아니라

마음으로 보이는 법신의 부처님이 아닌 

눈에 직접 현신하는 색신의 부처님을 수없이 늘어놓고

발복을 빌어본들 시끄럽기만 하다.

 

은석암 약수는 겨울로 접어들자

시원한 물줄기가 쪼그라들더니

힘없는 노인의 오줌줄기처럼

가느다랗고 찔끔 쫄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