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 6

가매초밥

시간에 구애됨이 없다는 삶이란 아무런 걱정 없는, 즉 여유로운 낭만이 가득해서 느긋하거나 아니면 불행에 찌든 생활을 극복하지 못해 자포자기의 비애가 가득하여 넋을 놓거나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먼 거리의 이동 시간을 생각 없이 설정하다 보니 때를 놓쳤다. 어쨌거나 이름 있는 맛집을 찾아갔는데 코로나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문을 닫았단다. 바로 옆에 있는 초밥집을 보며 별로 끌리지도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찾아들었으나 이마저도 아슬하게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 쫓기게 되었는데 매장에서 도시락의 기발한 판매 발상 때문에 포장 구매하였다. 도청을 개조한 문화센터 공원 모퉁이 긴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데 그 맛이 가히 일품의 경지다. 돌이켜보니 일생동안 초밥을 이렇게 맛있게 먹어본 적이 있었나 싶다. 가매 ..

카테고리 없음 2022.02.28

개명한 세상임에도 현대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점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 매우 어리석은 미개한 짓이라며 점치는 행위를 강력한 형법을 앞세워 겁을 주고 탄압을 했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점의 역사는 언제부터였을까? 기록으로 나타난 시점으로만 살펴보아도 대략 오천 년이 훌쩍 넘는다. 고대인들이 점을 쳤던 갑골문이 발견됨으로써 거의 유실되었던 하 은 주의 역사가 복원될 정도였으니까 점의 역사는 인류의 발생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갑골문 시대의 군주들은 통치는 물론 일상의 모든 것을 점에 의해 판단한 것 같다. 지금까지 발견된 수많은 갑골문은 대략 30%가량 해독되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국가 대사인 전쟁에서부터 아주 사소한 일상의 일까지 점을 쳤다고 한다. 그 유..

카테고리 없음 2022.02.23

핏제리아 오

그 어느 누구도 음식에 대한 편견이 없다면 약간의 거짓뿌렁의 언표라 여겨진다. 사람마다 호불호의 기호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의 기호에서 이태리 음식이 썩 좋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내키지 않을 정도로 싫은 것도 아니고 어쩌다 좋은 이태리 음식을 만나면 피자며 파스타를 정말 맛있게 음미한다. 핏제리아 오의 음식 솜씨는 너무도 탁월하다. 위층이 이태리 음식점이고 아래층에는 계향각이 영업을 하고 있다.

카테고리 없음 2022.02.20

어수정 국수

값도 값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느낌이라서 처음에는 꺼려졌다. 그 처음이라는 의미는 첫맛을 본지가 이미 몇 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동두천에는 어수동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을 지나다가 갈증을 해소하려고 마셨던 샘물이 있어 촌사람들이 임금이 특별히 마신 물이라 하여 이 샘의 명칭을 어수정이라 이름하고 마을의 이름까지 어수동이라 하였단다. 요즘엔 전곡엘 자주 가게 되었다. 그래서 외식을 하게 되는데 화학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음식을 찾기가 참 어렵다. 또 국수는 내 기호에 거리가 있는 것이라서 잘 먹지 않는다. 전곡에 터를 잡은 어수정 국수 주인장은 좋은 멸치로 순수하게 국물을 내서 맛을 낸다며 과시하듯 자랑한다. 반찬으로는 배추김치 서너 쪽과 노랑 단무지 몇 쪽이 전부다. 오늘도 맛..

카테고리 없음 2022.02.18

남해 바닷속 물이끼처럼 자라나 바싹 마른 얇은 기름 소금구이로 포장되어 긴 육로를 달려와 서울 한구석 나의 식탁 위에 올려졌다. 네모 규격의 표준 크기는 날 선 가위로 8등분으로 잘려 한 장씩 한 숟갈의 밥을 품고 고소 짭짤한 입맛을 가득 펼친다. 주둥이의 간사함이란 매번 겪는 일이지만 처음 김 한 장의 맛으로 끽이던 것이 두장을 포개서 싸야 간이 맞고 맛이 더 좋다. 김의 팔자가 기구하다. 대선후보들에게 상식 이상의 기대를 바라지 말자.

카테고리 없음 2022.02.14

수신과 정심

몸을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 몸에 분노가 치밀면 바른 마음을 얻을 수없고 몸에 두려움이 있으면 바른 마음을 얻을 수없고 몸에 쾌락이 가득하면 바른 마음을 얻을 수없고 몸에 근심이 있으면 바른 마음을 얻을 수없다. 마음에 바름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맛을 모른다. 그래서 몸을 닦는다는 것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 大學 - 사서를 읽어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정말 오랜만에 대학을 정독하는데 修身의 장에 위의 구절이 나와 옮겼다. 耳順이요 從心所欲不踰矩라는데 아직도 正心을 얻지 못하다니 나 자신이 한심해도 너무 한심하다. 修身이 잘못되었나 보다. 齊家 治國 平天下로 이어지는데 대선후보들의 면면을 살피면서 이들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카테고리 없음 2022.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