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196

적벽가

80세에 가까이 이른 성준숙 명창의 적벽가를 감상하였다. 고수 : 김청만. 조용복 국립극장/하늘 5월 14일 오후 3시 박동진 명창의 적벽가에 익숙해서인지 성준숙의 적벽가는 사설도 조금씩 다르고 창도 차이가 있다. 노쇠한 몸으로 3시간이 넘게 적벽가를 완창 한다는 것이 한편 놀랍다. 깜빡이는 기억의 끊어짐은 무대 소품으로 놓인 상자 뒤에 몸을 숨긴 조력자의 노고로 그럭저럭 청중의 웃음 속에 이어져 길고 긴 판소리 사설이 완성되었다. 삼국지연의 적벽대전은 조조의 백만 대군이 거의 전멸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는 인간 역사의 최대의 비극적인 전쟁사임에도 우리의 판소리로 재구성된 사설은 해학적인 요소로 가득하여 인간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희비를 걸쭉한 창을 통해 공감하게 된다. 오늘도 역시 득음의 명인을 ..

카테고리 없음 2022.05.14

송하노인

그 어느 날부터 노인들의 쉼터가 되었다. 차가운 돌덩이인데 두꺼운 스티로폼 방석을 깔고 아주 편하게 앉아 세태를 관망이라도 하는 듯 들릴 듯 말 듯 그들만의 언어로 담소를 나눈다. 나름 진지하다 못해 장시간 돌부처처럼 꼼짝도 않고 눈알만 약간 굴리며 시건방진 젊은이가 빠르게 지나가면 속으로 혀를 끌끌 차고 또래의 늙은이가 기운 없이 느릿느릿 지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눈꼬리가 쳐지며 지친 눈길로 멍하니 바라본다. 松下老人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알 수 없다.

카테고리 없음 2022.05.10

나물캐는 아낙

나물 캐는 아낙 셋 바구니 대신 까만 비닐봉지 옆에 들고 하늘거리며 재잘재잘 햇살 가득한 산길을 내려온다 작년에 취나물이 있었다네 올핸 없어요 쪼만해서 그냥 내려오는 길예요 해해거리며 댓구도 잘하네 암것도 모르는 도시 아낙들 살랑대며 산길 걷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만족할만한 증폭된 허상 헛된 포만감 가득 표정만은 맑고 밝다

카테고리 없음 2022.05.07

두릅과 취

경기북부의 들녘에도 매우 분주한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만약 지구 생명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저 지독한 생명력의 풀들은 남아있으리라. 하루를 통째로 풀 뽑기에 매달렸으나 목표치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어요. 해가 한참 기울 무렵 허리 펴고 파릇한 숲 쪽으로 눈을 돌려 두릅나무의 상태를 살펴요. 며칠 새로 새로운 순이 돋아 두 번째 수확의 기회를 운 좋게 맞아 한주먹 조심스레 땄습니다. 낙엽 사이로 취나물도 간혹 보이는군요. 취나물도 한주먹 채취하였지요. 시장에서 사 먹는 나물과는 차이가 크군요. 우선 향이 짙고 맛이 강합니다. 저녁식사 한 끼를 아주 맛있게 잘 먹었네요. 풀과의 거의 전쟁 수준의 전투를 치르고 축 늘어진 피로를 두릅과 취나물로 싹 풀었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2.05.05

선동보리밥

간판으로는 서민들이 즐겨 찾는 소소한 음식점으로 보여지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한번 맛을 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게 되는 전통의 맛을 고이 간직한 명가 중의 명가입니다. 같은 재료 같은 조리법 그런데도 맛의 미묘한 차이는 우리의 미각을 잠시라도 속일 수가 없어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맛의 차이를 우리는 편리한 대로 손맛이라고 하지요. 선동 보리밥 그 오묘한 고조선 전통의 맛은 손맛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바가 없습니다. 성북동에 있어요.

카테고리 없음 2022.05.03

환기換氣

- 무조건 문을 다 열고 한 시간 이상 꼭 환기시켜 매일 - 아침 일찍 일어나 딸의 명령대로 앞뒤 문부터 열어요 오늘은 망설여집니다 마치 흐린 것처럼 온통 뿌연 것이 습한 수분의 밀집이 아닌 미세먼지 가득 머금은 황사의 느낌이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창문을 열자마자 특유의 흙먼지 냄새가 코끝을 스쳐요 전염병이 창궐할수록 환기가 중요해 그러니까 잊지 말고 매일 문을 활짝 열고 알았지? 이미 출가외인이 된 딸의 엄명에 꼼짝없이 순응하는 내 모습이 한편 우습기도 합니다 화분에 물 주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이면 되니까 너무 자주 주지는 말고..... 화분에 물 주는 것과 매일 환기하는 것 오늘 같이 황사가 가득한 날은 문 열기가 정말 싫어요

카테고리 없음 2022.04.27

갑오징어

박 선생님은 목포의 어물전에서 싱싱한 갑오징어를 하얀 상자에 얼음 가득 채워 꼭 산 것처럼 포장해 보내왔어요. 어찌 먹을 줄 몰라 여기저기 전화로 물었더니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먹어라 야채를 넣어 볶아먹어라 싱싱하면 회로 먹어라 등등.... 뼈도 빼내고 잘 손질해서 푹 삶아 재래식 토종 고추장에 찍어 냠냠 짭짭 먹어 봅니다. 박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지요. 그 맛이 오묘하고 매력이 있고 맛있어요.

카테고리 없음 2022.04.26

예쁜 꽃

우리 산에 산목련인지 함박꽃인지 커다란 나무에 예쁜 꽃이 피었어요. 밤나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사이사이에 몇 그루의 꽃나무가 있군요. 마당에 요런 꽃도 피었습니다. 이름은 몰라요. 눈썹이 머리털처럼 자라납니다. 뭘 잘못 먹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불과 몇 년 사이 가지런하던 눈썹이 새우촉처럼 길어졌습니다. 특히 하얗게 탈색된 눈썹이 길게 자라나요. 이발소 주인은 하얀 눈썹을 잘라주겠답니다. 나이가 들어 보인다나요? 뽑아보기도 하고 잘라보기도 했지만 다시 자라기 시작하는 눈썹은 더 길어지는군요. 이거 어찌해야 하는지 경험이 있으신 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2.04.20

봄에 뜨는 달

집에 오는 길에 둥근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았어요. 아름답기가 그지없군요. 달덩이 같았던 젊은 날의 내님인가 했어요. 환하게 웃는 그대가 몹시 그리웠나 보오. 벌써 두릅은 다 따갔구려 어떤 하늘님은 참 부지런도 하오. 아직 나물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산이 어지럽소. 내 산에 나오는 두릅인데도 해마다 그 맛을 놓치고 마는구려. 보아도 보고 싶소.

카테고리 없음 2022.04.16